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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05. 2023

즐기는 자와 못 즐기는 자, 세련과 촌스러움의 차이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이번 주말에 끝나니 벌써 종반전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이 연기되어 개최되는터라 5년을 기다려온 선수들이 유감없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들을 보여주고 있다. 메달의 색깔이 어떻든, 아예 메달과 관련이 없는 성적을 거두었든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낼 일이다.


공중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는 경기들을 보면서 2가지가 눈에 띈다. 경기를 즐기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그리고 세련된 선수와 촌스런 선수들의 부류다.


인간의 본성에 따라 범주화하고자 하는 심리가 적용된 개인적 시각임을 전제로 깔고 보자. 먼저 경기를 즐기는 선수의 부류 중에는 탁구의 신유빈, 높이뛰기의 우상혁, 배드민턴의 안세영, 양궁의 임시현, 펜싱의 오상욱, 수영의 황선우 등등을 꼽을 수 있다. 눈에 띄는 선수가 이 정도이고 대부분의 대한민국 선수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70-80년대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 나가서 선전을 펼쳤던 선배들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운동했던 세대들과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경기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자세야 모든 선수들이 같을 것이지만 실점을 하거나 게임에서 지는 순간에 보이는 표정과 행동을 통해, 경기를 즐기는지 아닌지가 아우라처럼 드러난다. 즐긴다는 것은 가진 자의 여유일 수 있다. 해당 종목에 필요한 기량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선수도 있을 것이고 엄청난 훈련으로 달성한 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항상 모든 경기, 모든 게임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길 때의 표정과 행동은 만인의 공통일터다. 


하지만 지고 있을 때나 졌을 때의 표정과 다음 행동이 그 선수의 인격과 품격을 결정한다. 당연히 게임에 지고서도 속 편한 선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했음에도 졌다고 하면 마냥 고개를 숙일 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기량이 더 뛰어난 상대 선수에게 졌으면 승패를 인정해야 한다. 이때 즐기는 자의 여유가 드러나는 것이다. 즐기는 자의 여유는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를 깔아야 등장하는 편안함이다. 그래야 져도 여유로운 웃음과 표정과 포옹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졌다고 무릎 꿇고 앉아 울거나 안 일어나고 운동기구를 집어던지고 화를 폭발하듯 내보이는 선수는 게임을 절대 즐길 수 없다.


운동을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부류도 경기 중에 그 자세가 그대로 드러난다. 메달을 따야 군대 면제가 되는 선수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운동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는 전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을 탓할 수 만도 없다. 그만큼 절실할 테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간절함이 지나치게 되고 거칠어지게 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기에 무리하게 된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화면으로 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참 치졸해 보인다.

또 하나 중계 화면 속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타국 선수들에 비해 엄청 세련되게 보인다. 외모적으로 풍기는 모습들이 다들 멋지고 예쁘다. 특히 북한 선수들과 맞붙게 되는 경기를 볼 때면 확연히 다름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차이라고나 할까?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 가지고 범주화시키는다는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화면 속 북한(조선이라고 써야 하나 ㅠㅠ) 선수들의 모습은 마치 남한의 70년대 모습이 오버랩된다. 모두 비슷한 유니폼을 입고 하는 운동에서 촌스럽다, 세련되다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운동복 디자인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그 옷의 디자인을 소화하는 것도 사람의 몫인 경우가 많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 선수들을 보면 조금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이러다 테러당하는 것인 아니지 ㅠㅠ)


북한 선수들의 무표정의 얼굴들, 긴장한 듯한 모습, 왜소한 체구, 국제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매너 등등이 대한민국 선수들과 겹쳐지면서 세련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제 발달이 세련됨을 앞당길 수 있지만 여기에도 거쳐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수준 차이가 나기까지 지나온 환경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한 세대 이상 벌어진 경제적 격차는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차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세련됨은 사람의 아우라로 비치는 품격이다. 외모적 치장을 잘한다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세련됨을 풍기는 사람의 품격도 같이 갖추어야 보이는 덕목이다. 즐기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고 있는 선수들이 대한민국의 품격과 여유와 세련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여 자뭇 자랑스럽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해서 더욱 그렇다. 국뽕이 충만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정치판에 있는 아저씨들이 조금만 더 잘해 준다면, 더 좋은 나라, 더 세련된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며칠 안 남은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세련미도 뿜뿜 계속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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