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같은 3일 연휴를 보내고 출근하여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건물 보안직원의 경쾌한 아침인사를 들으며 사무실이 위치한 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순간 급 당황. ㅠㅠ
사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ID카드가 주머니에 없었다.
요즘 대부분의 회사가 신분증 태그를 통해 출입문이 열리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근태관리도 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지금 근무하는 건물은 사무실 앞에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본사 건물은 ID카드가 없으면 아예 건물 내로 들어갈 수 조차 없다. 사무실 책상 앞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ID카드를 3번이나 태깅을 해야 가능하다. ID카드가 없으면 임시출입증을 발급받아서 들어가야 한다.
이런 제길. 한참을 서성이며 혹시 나오는 직원이 있나 두리번거리다 아침 당직을 하는 직원에게 휴대폰 전화를 한다. 문 열어달라고 ㅠㅠ
오늘은 양복 정장을 입을 일이 있어 ID카드가 있는 백팩을 놓고 브리프케이스에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와 태블릿 정도를 챙겨 넣었는데 ID카드 챙기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겨우 직원의 도움으로 사무실 안으로 진입을 해서 책상에 앉았다. 데스크 탑 컴퓨터를 부팅하면서 오늘 하루종일 화장실도 못 가겠네 걱정이 앞선다.
한순간 사람 바보되는 게 이렇게 쉽고 간단하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겠지라는 자괴감을 추스른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어떤 가치로 부각될 때가 제일 황당한 일중의 하나가 된다. ID카드는 회사 사번과 이름과 소속부서 등 간단한 개인정보가 담겨있는 RFID 칩이 내장되어 있다. 이를 기반으로 출퇴근의 근태관리도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 보안과 직결된 곳과 접근이 가능한 경계등급도 지정이 가능하다. 같은 건물이라도 다른 층 다른 부서에는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업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신분 확인과 보안은 중요한 사안임에는 틀림없고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직원들을 관리하는 족쇄로도 언제든지 작동시킬 수 있다. 단순한 신분 확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정도를 넘어서 근태를 감시하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ID카드가 없어 출퇴근 근태가 자동 저장되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야 담당 직원에게 말해서 수동입력을 하면 된다. 하지만 ID카드가 없으면 건물 밖을 나가거나 심지어 로비에 있는 커피숍을 내려가거나, 복도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ID카드가 없이는 사무실을 나갈 수는 있는데 들어오지 못하니 말이다. 화장실을 갈 때도 직원들 ID카드를 빌려서 가거나 들어올 때 문 앞에서 다른 직원들이 나오기를 서성거리며 기다려야 한다.
직원들의 목에 걸린 ID 카드가 아시안게임 금메달보다 멋져 보이고 귀하게 보인다.
조직에서 직원 한 명 왕따 시키고 버리기에 정말 쉬운 세상임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ID카드 정보만 시스템에서 빼버려도 꼼짝 못 하게 회사 출입을 막을 수 있느니 말이다.
ID카드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각 부서, 각 팀별로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에 단체방을 만들어 운영한다. 쉽고 빠르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유용성과 효용성의 이면에는 또 다른 가면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를 배제한 또 다른 단체방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폐쇄형 단톡방으로 운영되면 그 방에 있는 사람끼리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고 일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그 방에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 공간으로 작동될 수 있다.
간혹 여러 명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소식이 뜸해지고 있다면 아마도 마음이 맞는 몇몇 멤버가 다른 카톡방을 만들어 분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체나 조직, 모임에서 구성원을 손쉽게 배제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모든 도구들이 순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역기능도 가능하다.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지는 오로지 사용자에게 달렸다. 긍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는 이유이며 항상 반대편도 감안하라는 충고이다. 세상 살기 어렵다는 소리이고 조심하라는 소리다.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항상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ID카드 놓고 와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 전전긍긍하지 말고 말이다. 에구 클났네. 오줌 싸러 가야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