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Oct 20. 2023

꼭 말을 해야 알아들어?

살아있는 생물의 본질은 바뀌고 변화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오면 늙는다는 현상이다.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인문학적 욕심일 뿐이다. 허상이다.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 살아있다, 존재한다라고 하지 않는다. 방부제 먹은 듯 젊음을 유지한다고 뻐겨봐야 타인에 비해 잠시 속도가 늦을 뿐이다.


생명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라면 우주적 물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달 표면에 찍힌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있다. 살아있는 생명은 오직 지구표층애서 벌어지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태양계 역사 50억 년이 만들어낸 확률적 밀도의 생명의 역사 속에 잠시 머물다 다시 50억 년 후에는 태양의 심장에 녹아들 수밖에 없는 생명의 가벼움이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생명이라 하고 살아있다고 한다. 지구를 떠나면 '변하지 않음'이 본질이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 우주로 걸어 들어가면 빅뱅과 초신성의 폭발도 우주적 몸살의 변화이고 물질이 바뀌는 현상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조화, 그것이 우주를 해석하는 기본 원리 중의 하나가 된다. 우주 속으로 멀리, 깊이 가보면 생명은 정말 지구에서만 벌어지는 아주 특이한 현상임을 눈치챌 수 있다.


특별하고 신비로운 생명조차 우연의 확률적 밀도가 빚어낸 형상임을 안다면 거만을 내려놓아야 하고 겸손으로 무장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에 경배를 해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생명은 '관계'로서 유지되는 거품현상일 뿐이기에 형상을 유지하는 관계를 잘 관리해야 그나마 짧은 기간을 버텨낼 수 있다. 생명은 "now or never"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없는 것'이다.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당겨 쓰는 인간에게 '지금'이 갖는 의미는 존재 자체를 말한다. 존재 자체는 살아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나'라는 존재 그리고 '지금'만이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하는 모든 행위들도 '지금'이라는 시간 단위와의 관계성에서 의미를 갖는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지금 이 순간만이 시간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지금 잡아채지 않으면 영원히 없다. 허공에 뱉어진 말과 같다. 공기의 떨림을 의미로 받아들일 때 단어가 들리고 문장이 들린다. 그것을 들었다고 하고 안다고 한다. 허공에 흩어진 단어들을 주워 담아 문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문맥을 연결한다는 것이다. 연결성이다. 앞뒤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절묘함의 규칙이 작동해야 공감을 할 수 있다. 문맥은 사회적, 문화적 현상의 연결이다.


인간의 본질이라고 하는 언어도 사회적, 문화적 현상일 뿐이다. MIT 언어학 교수인 촘스키(chomsky)는 인간의 언어능력을 생물학적 본성으로 봤지만 즉흥적으로 작동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언어능력이 유전적 본능이라면 전 인류가 말하는 형식이 같아야 하지만 언어의 작동은 천차만별이다. 인류의 언어는 7천 개 이상이나 존재한다.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브레인의 1차 감각영역의 호문클루스 배치는 생물학적이지만 언어는 호문클루스 영역을 벗어나서 장기기억을 관장하는 2차 감각연합영역에서 만들어진다. 기억에 따라 구문이 달라지고 뉘앙스와 어감이 달라진다. 언어는 우연적 확률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언어가 위대하다. 천차만별의 다른 상황에서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 내고 공감을 유도해야 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거품처럼 사라지는 말의 향연에서 말을 잡아채 의미를 전하고 받아들이는 정교한 작업의 시작이다.


언어는 문장의 맥락이 생명이지만 같은 말이라도 엑센트에 따라 말하는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달리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대단한데"라고 하면 칭찬하는 말이지만 말꼬리를 올리면 비꼬는 말로 들리게 된다. 글로 써놓았다면 앞 뒤 문장의 문맥을 이해해야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눈치챌 수 있다.


그때 그 상황에서만 의미를 갖는, 그 상황이 아니면 난센스가 되는 것이 언어다. 연인끼리의 대화는 두 사람 간에는 사랑의 밀어이지만 주변사람들에게는 닭살 돋는 표현으로 들린다. 그래서 언어는 찰나의 예술이고 순발력이다. 언어의 마술사가 위대한 이유다. 인류의 대표적 언어의 마술사가 부처와 예수다. 두 사람은 오직 말로써 인류 문명을 지배했다. 글을 써서 자기의 생각과 철학을 전한 것이 아니고 말발로써 인류를 웃고 울리고 살렸던 것이다. 말로 표현해야 한다. 말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 알면 표현하게 된다. 표현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해야 알아챈다. 말 못 하고 꿍꿍거리고 앓아봐야 눈치채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포옹을 해야 따뜻해진다. 표현은 그런 것이다. 말로 하는 것이다. 예수나 붓다처럼.

작가의 이전글 전철 막차, 객실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