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세상이 굴러가는 대로 내 생각과 행동을 맞춰야 한다. 지조 없다고 할 수 도 있으나 살다 보면 그게 해답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는데 정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자만 확률적 밀도에 의해 세상이 변하고 정의되니 그중의 하나를 해석해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그렇게 되거나 안 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된다.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선택하고 행동했기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안돼도 된다고 덧씌운다. 자기 합리화와 확증편향이 작동한다.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의 시선과 창으로 세상을 보고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모호한 불쾌감과 모호한 쾌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밀려드는 파도와 같은 것이다. 이 또한 당연하다.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데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내 생각과 행동과 같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같을 것 같은데 같지 않음에서 오는 모호한 불쾌감과 같지 않을 것 같은데 같게 느껴지는 모호한 쾌감이 공존하고 공생한다.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심리적 전쟁의 일부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언어의 표층을 떠도는 변덕스러운 감정의 존재가 인간이다. 생각의 깊이가 심층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의 거품이다. 그 거품 속에서 오류를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과정을 산다고 한다. 지금 한순간 한순간 잡아채지 못하면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생각과 태도, 행동 따위가 서로 모순되는 상태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모순되게 다른 행동이 표출되었을 때 느껴지는 불쾌함의 감정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이 인지부조화 상태를 너무도 불편하게 여긴다.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한다. 그 행동과 태도로 드러나는 것이 자기 합리화이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인지부조화 상태에서 자기 합리화와 확증편향으로 확대되어 가는 현상은 정치 성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기가 선택한 후보가 그나마 정치를 잘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찍어줬는데 별로 신통치가 않으면 자기의 판단하고 행동한 결과에 오류가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안다. 심리적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이때 자기의 실수를 즉각 인정하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투표이긴 하지만 이제부터는 인지부조화의 불편함을 자기 합리화와 확증편향으로 바꾸는 작업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선택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됐으면 더 엉망으로 했을 거야" "좌파들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하는데 어떻게든 막아야지" "강성 우파 꼰대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바로 잡아야지" 등등 좌와 우의 정치성향을 떠나 각자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을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합리적 반론이나 자료는 듣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아니 아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된다. 불편한 진실(unpleasant truths)과 편안한 거짓(comforting lies)중에서 편안한 거짓을 택한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게 된다. 내가 편하면 된다. 그렇게 사실이 왜곡되고 변질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사상적으로 편향된 사상범들에게 전향서를 강제로 쓰게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고도의 심리전술이 숨어있다. 전향서에는 신념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쓰게 한다. 그것도 손으로 직접 쓰게 한다. 옆에서 문장을 불러주거나 다른 필사본을 주고 그대로 쓰게 한다. 강제로 쓰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썼지만 그 종이가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지배한다. 인지부조화 상태를 일부러 만들어 감정을 흔들고 종이에 쓰인 내용 때문에 언행을 일치시키고자 행동도 따라가게 만든다. 변절자 만드는 것은 그렇게 의외로 쉽고 간단할 수 있다. 나중에 양심선언할 수 도 있지만, 그렇게 한 개인의 양심은 교묘한 심리전에 감춰지고 묻혀가는 경우가 더 많다.
세상의 흐름에서 자기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이념(理念 ; ideology)을 신념(信念 ; belief)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면 엉뚱한 자기 합리화와 확증편향으로 빠진다. 타인의 조언을 무시하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게 되고 타인을 동행자가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독단으로 치닫는다. 정치 및 사회는 인간 조화의 최고 경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이익과 선을 향해 부족함은 채우고 서로 도와서 함께 공생하고자 하는 수단의 체계다. 집단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주변을 살펴야 한다. 혹시 정보가 부족하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닌지 염두에 둬야 하고 부족하면 채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독(愼獨)을 강조하는 이유다. 자기를 돌아보고 채찍질하지 않으면 인지부조화 상태를 벗어나고자 자기합리화하고 확증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다양함이 당연하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상대편도 이해가 되고 좀 더 상생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텐데, 이것조차 쉽지 않은 일임에 좌절할 때가 많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그러한 일이다. 복잡 미묘한, 말과 글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넘치는 그 무엇, 오리무중의 그 기묘함, 하얀 서리발에 누워있는 잡초의 빛바랜 초록색과 같다. 그런 와중에 살아가고 있고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기적 같은 삶의 시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