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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6. 2023

욕망을 갈망하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1947년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으로 1948년 연극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우리에겐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도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로 더 기억되고 있다. 영화 스토리보드야 워낙 유명한 것이라 생략하기로 하고 오늘은 '욕망'이라는 단어에 천착해본다.


욕망(慾望 ; disire)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란다"는 뜻이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식적 심리 상태다. 비슷한 단어로 욕구(欲求 ; needs)가 있는데 욕구도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것이지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부족한 상태를 채워서 해결하려고 하는 심리를 말한다. 욕망은 자기 스스로 의식적으로 부족을 느껴서 탐하는 것이므로 욕구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적으로 결핍의 상태를 보충하려고 하는 것인지, 무의식적인 결핍의 상태냐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는 이미 학창 시절 때 공부했다.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 안전에 대한 욕구(safety and security needs) -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love and belonging needs) - 자기 존중의 욕구(self-esteem needs) - 자아실현의 욕구(self actualization needs)의 단계로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가 생긴다고 봤다. 매슬로우는 나중에 이 5단계 이론에 자아초월 욕구(transcendence needs)를 추가하여 6단계 이론으로 만들었고 1990년대 들어서 매슬로우의 제자들은 인지적 욕구(cognitive needs)와 심리적 욕구(aesthetic needs)를 추가하여 8단계의 욕구계층이론을 만들었다.


하지만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은 많은 반론이 제기되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어 그저 수많은 심리학 이론의 첫 바탕이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진화론자들은 1단계에서 5단계까지를 생존과 번식 욕구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간단명료한 것이 이길 수밖에 없다.

본능을 넘어 무엇이 되었든 하고 싶다는 의식적 욕망은 살아있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은 죽어있음과 진배없다. 살아있는 동물로서의 존재의미가 사라진 상태다. 좌절과 우울증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사실 고차원의 의식을 욕망하는 것이 더 훌륭한 것이고 바른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오산이다. 욕망은 드러내는 것이다. 신체적 욕망이든 정신적 욕망이든 드러내고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욕구와 다른 욕망을 실현해 낼 수 있다. 결핍의 욕구상태를 채우고자 하는 욕망을 일으켜야 한다.


바로 욕망의 의식이다. 잡아채야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면 뭘 잡아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 멍하니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 육체 및 정신은 흐리멍덩해진다. 기계만 갈고닦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갈고닦아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바로 육체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고 정신적으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욕망은 운동과 공부의 단초다.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추가되다 보면 운동과 공부의 불씨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육체가 삐그덕거리고 정신도 집중이 안 되는 현상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음을 직감하면 더 이상 이렇게 빈둥거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게 된다. 그래야 위기감이 욕망을 부추겨 움직이게 하고 공부하게 한다. 아직 신체적 정신적 위기감을 못 느끼고 있다면 심신이 건강한 상태일 수 있으나 착각이다. 역치의 끝점까지 다가서고 있지만 아직 그 선을 넘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을 뿐이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순간, 되돌아오지 못한다. 왜 운동 안 하고 공부 안 했는지를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때 가서는 참회를 하고 다시 시도하려고 해도 이미 버스 지나간 뒤다. 치매가 가속화되고 겨우 걸음을 옮기는 수준이라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너무도 자명한데 아직 오지 않았고 당하지 않았기에 모르고 외면할 뿐이다. 먼저 눈치챈 자만이 그 상황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다.


욕망은 채워지면 욕망이 아니다. 욕망의 그릇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종류를 다변화해야 한다. 하나를 채우면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치지 않는 욕망을 찾아야 한다. 하는 동안 즐거워야 하고 기뻐야 하고 행복해서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일 테지만 계속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살고자 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욕망을 들떠 세워야 한다. 일단 물어라 무엇이 하고 싶은지, 그리고 나서라 무소의 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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