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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1. 2023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면 내가 편해진다

말하기 좋고 글쓰기 좋은 만인의 소재가 있다. 바로 정치이야기다. 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뱉으면 되고 그냥 아무 생각이나 쓰면 된다. 특히 비난하면 되고 욕하면 제격이다. 아무 의미도, 뜻도 따지지도 않고 "병신들, 그것밖에 못해"라고 해도 마치 뭐가 있고 , 정치적 소신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말하고 쓰면 그것이 의견이 되고 가끔은 진실에 가깝다고 우길 수 도 있다. 정치판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돈 있는 놈, 권력 있는 놈이 이기는 요지경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힘없는 놈은 힘없으니 힘 있다고 자처하는 놈 까야 속 시원해진다.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콘텐츠 중의 하나가 정치 관련 이슈를 다루는 것이다.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제각각 떠들고 주장한다. 거의 거친 말의 배설 수준이다. 조회수 올리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언사가 남발된다. 정치적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실에 바탕을 둔 것도 아니다. 그저 조회수 올려 돈을 벌고자 하는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 맞고 틀리고의 세계가 아니다. 


정답이 있는 듯 하지만 없는 듯하고 해법이 있는 듯 하지만 그 또한 애매하다. 인간 군상이 모여 있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조해 보면 집단 사회의 모든 현상들이 똑같다. 정치판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고 저질의 난장판처럼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집단의 이익과 안녕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는 구성원들의 합의와 양보 속에 체제가 유지되고 서로의 생존을 담보해 내는 중요한 종합 예술이다. 권력을 휘두르는 얄팍한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권력을 투표를 통해 쥐어준 사회 구성원의 수준이 그렇기에 가능한 행위다. 나는 그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았는데라고 변명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이 사회에서 같이 숨 쉬고 살고 있는 한, 나는 그 조건을 선택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들은 왜 저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지? 왜 저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반대표를 던진 국민은 국민도 아니라는 소리인가? 어떻게 저렇게 독단적이고 막무가내일까?"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상대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르다고 내가 고민해 봐야 나만 스트레스받고 열받을 뿐이다.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한 발 물러나서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들여다보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눈치채고 나면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심지어는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꼭 인지과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생물 종으로서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집단을 이루어 생존을 하기 위한 본능적 방편들의 작동임을 눈치채기만 해도 된다. 굳이 인지부조화, 자기 합리화, 확증편향, 집단동조이론, 더닝 쿠르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와 같은 학문적 개념들을 동원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인지과학의 바탕은 '살아남기'위한 것에 있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왔고 환경에 적응해 왔고 그 과정 속에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들에 이름을 붙여 이론으로 설명서를 붙였을 뿐이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정치권에 들어가기만 하면 저렇게 멍청해지지?"라고 하는 물음도 간단히 집단동조이론으로 해답을 제시할 수 있긴 하다. 조직에 소속되면 조직의 집단 압력을 받게 된다.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생각과 믿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자신의 소신과 경험과 지식은 감추어지고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조직과 같이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들어가기만 하면 멍청해지는 정치인을 수없이 목도해 왔는데 그 원인은 너무도 간단한데 있었던 것이다. 그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다. 얼마나 처절하고 애처로운가 말이다. 욕할 것이 아니고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봐줘야 한다.


갑자기 정치인들이 불쌍해 보인다. 측은해 보인다. 자기 자리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힘내시고 열심히 하세요"라고 격려의 한 마디라도 해줘야 한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선 용기를 칭찬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몰상식, 몰염치로 일관하고 권력의 맛에 도취되어 "국민을 대표하여" "국민께서 지켜보고 있기에"'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마치 자기가 대표인양 착각하는 부류들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위한 대표 봉사자"가 정치를 하고 행정을 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잊지 않도록 계속 감시를 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와 봉사하는 자리다.


그들만의 잔치판으로 정치가 돌아가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서로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고 잘하면 되지.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거야"라고 외면해 버리면 정치판은 절대 정화되지 않는다. 정치판 뒤에는 진짜 무서운 국민의 눈초리가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탈진실의 시대에 겪는 안타까움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수준인 것을 --- 인정하고 나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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