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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1. 2023

주방으로 가는 남자들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 ; 요리하는 인간)는 사람에 대한 정의다. 인간만이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한다. 요리는 단순히 생명유지를 위해 먹기 위한 행위를 넘어 예술이 되었고 과학이 되었다.


요리는 오감의 체감각이 모두 동원되는 종합 예술이다. 보이는 아름다움과 지글거리는 소리와 코로 전해지는 풍미와 혀의 미뢰를 감도는 맛이 어우러질 때 소름 돋듯 촉각도 살아난다. 예술의 궁극적인 경지에 바로 요리가 있었다. 시각으로 대표되는 미술이나 청각으로 대변되는 음악은 물리적 대상이 눈이나 귀의 감각세포로 전해져 브레인에서 전기신호로 바뀌는 물리적 현상임에 반해, 미각 및 후각은 물질이 감각세포에 닿아서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 현상을 감지한다. 엄밀성에 있어서 한 차원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요리는 폄하되어 왔다. 먹고살기 급급했던 시절에 겪어야 했던 생존의 수단이었기에 그럴 수 도 있겠다 싶다. 그렇지만 먹고살만해지면 맛이 멋으로 치환된다. 맛에 대한 멋은 일단 먹을 것이 남아야 한다. 너무도 단순하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맛은 사치일 뿐이다. 어떻게든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놔야 한다. 에너지를 저장해 놓을 수 있을 때 해 놔야 하는 것이다. 언제 또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성인병으로 지목받고 있는 콜레스테롤, 고혈압, 당뇨 등도 모두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에너지를 저장해 놓으려는 기재의 작동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먹을 게 넘쳐나는 과잉상태가 되었음에도 에너지를 저장하고자 하는 본성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가정에서 요리하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실 조선시대 궁중의 대령숙수는 대부분 남자였다. 근래에도 대형 호텔 주방이나 유명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도 대부분 남자들이다. 요리가 힘이 많이 들어가는 힘든 일이기에 남자들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나이 50대를 넘어가는 꼰대 세대에게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별 역할을 구분해 놓는 어설픈 성리학적 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인 듯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라면 끓이고 냉장고에 있는 김치와 햄, 소시지, 계란 정도 넣는 볶음밥 정도 하고 와이프 생일날 미역국 끓이는 정도밖에 할 줄 모른다. 반성한다.

요리(cooking)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재료를 알맞게 맞추어 적절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이 요리과정에는 불을 사용하는데 방점이 있다. 불을 사용하지 않고 채소와 같은 재료의 원래 모양을 그대로 버무리고 양념하는 것도 요리라고 할 수 있지만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내놓는 것은 요리라 할 수 없다. 웍헤이(wokhei)의 불맛이거나 발효의 깊은 맛이거나 마이야르(maillard) 반응으로 풍미를 높인 맛을 연출하는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요리라 할 수 있다.


즉 요리는 온도와 시간을 통제하는 과학이다. 2도 정도의 온도 차이에도 식재료의 식감이 달라지고 맛이 달라진다. 중식당 요리들에서 맛볼 수 있는 불맛의 정수도 바로 웍의 높은 온도에서 나온다. 가정용 도시가스버너의 화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중식당용 프로판가스 연소 화력은 700도에서 800도까지 올라가 가정용 버너 화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 온도 속에서 웍헤이가 입혀지는 것이다.


요리사는 맛의 화학반응을 조율하는 화학자이자 조율사이고 맛과 멋을 동시에 구현하는 종합예술가다. 끼니때마다 덥석 덥석 식탁에 앉는다는 것이 얼마나 황송하고 죄송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먹는 사람이야 맛이 있네 없네 한 소리하면 그만이지만 준비하는 사람의 시간과 고민과 노력이 그 음식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을 일이 아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먹어야 한다.


남자들이여! 이제 주방에 드나드는 횟수를 아내와 동일하게 해야 할 때다. 요리에 흥미를 가지고 불을 다루는 기법을 익혀야 할 때다.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만들어서 먹어야 할 때다. 와이프가 여행을 가도 기꺼이 보내고 곰국을 끓여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달음식 시켜 먹으면 된다고요? 에라이 ~~


요리하는 과정을 즐기고 사랑해야 한다. 어설프게 시작하겠지만, 간을 못 맞춰 싱겁게 되겠지만 기꺼이 식탁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맛을 찾아갈 것이다. 유튜브에 널린 게 음식 만드는 법이다. 따라 하다 보면 내 것이 된다.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고, 서툴다고 느껴서 아예 손을 걷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주방에서 고기 구워지는 소리와 향긋한 참기름 냄새가 전해져 올 때 그것을 만드는 손이 내 손이 되어야 한다. 주말마다 마트에 장바구니 들고 찬거리 사러 나서야 한다. 나이 들면 자기가 챙겨 먹어야 할 때가 많아진다. 미리미리 준비하자. 남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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