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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3. 2023

삶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쳐 쓰는 것이다

요즘 부쩍, 쓰는 글의 주제가 "사는 것"에 대한 내용일 때가 많다. 가장 쉽게 손가락을 놀릴 수 있는 화두이기도 하고 누구나 언제든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부담 없이 접근하는 듯하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공부하지 않는다는 증표일 수 도 있다. 쉽게 쉽게 글의 성과물을 내놓고자 하는 욕심의 발로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글을 아무 생각 없이 술술 쓰듯이 '산다는 것'도 그렇게 술술 살아질까? 아니 사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매일매일 노심초사하고 사는 게 '사는 것'일 터다.


바로 '산다'라고 할 때 따라붙는 의문사 때문이다. '어떻게'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의 추구가 바로 삶의 질을 결정하고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다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가장 근접한 해법으로 만족해야 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산다는 것은.


'산다'는 화두의 근원은 생존에 있다. 살아있음의 동사형이자 현재형이다. 살아있음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과거에 잘 살았는데'와 '앞으로 잘 살 거야'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미래를 현재로 당겨와 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업보다.


'지금 살고 있다'라는 대 전제 속에는 '안전함'이 내재되어 있다. 생명을 유지할 안전함이 없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지역에 사는 시민들의 상황은 그저 생명을 붙잡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언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의 나날일 것이다.


멀리 남의 나라로 눈을 돌려 회피할 필요도 없다. 당장 내 머리 위에 정찰위성을 띄우고 이에 맞서 정찰기를 출격시키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공포를 외면할 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때만 되면 이런 상황을 교묘히 정권유지 수단으로 이용해 먹는 작자들이 있었기에 '또 그러나 보다'정도로 받아들이고 만다. 몇몇 양치기 정치인들의 권모술수에 온 국민들이 당해 왔기에 안전에 대한 위협에 무뎌져 있다. 국가 단위의 안보상황에서도 이럴지언대, 개개인의 삶에 노정되어 있는 불안과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을 볼 때는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경계의 눈초리로 살펴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계의 수준이 애매하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이나 사람은 아닌지, 꼭 타인에게 위험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타인의 피해를 눈감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살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서 타인을 살피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한다. 나는 타인에게 편안한 사람인가를 먼저 물으라는 소리다. 불교에서 말하는 3가지 보시, 즉 재물을 주거나(財布施) 지혜를 주거나(法布施) 두려움을 주지 않는(無畏施) 보시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이 무외시다.


"인상이 좋으십니다" "건강해 보이세요" "친절하시군요" 등등의 언사는 경계심을 풀고 편안하게 대하겠다는 무장해제의 표현이다. 첫인상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평생 살아온 삶에 대한 경로가 얼굴에 담겨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견해의 창이 얼굴이기에 그렇다. 거짓을 숨기거나 조장하면서 아무 얼굴표정 변화 없이 말을 하기는 전문 사기꾼이 아닌 이상 쉽지 않다. 썩소 한번 스쳐 지나가더라도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되고 그것은 얼굴의 주름으로, 두리번거리는 눈의 시선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관상을 옹호하거나 믿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확률로 알게 되는 범주의 합리화로 받아들일 뿐이다.


'편안함의 추구'.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최선의 방책이 숨어 있었다. 게으름도 사실 편안함의 상징이다. 편안하고 안전하지 않다면 게을러질 수 없다.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고 불안한데 느긋하게 게을러질 수 없다는 말이다. 게으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보상적으로 게을러도 살 수 있는 어떤 특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타인이 보기에 게을러 보일뿐 그만의 집중력이 있거나 시간 활용법이 있다는 것이다.


안전과 편안함을 담보할 그 무엇을 반드시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삶의 방향을 쥐고 있는 키가 된다. 지금 나를 안전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출근해 있는 직장, 글을 읽어주는 그대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각자가 평생 만들고 지켜온 편안함의 울타리를 잘 보수하여 고쳐 쓸 일이다. 오래된 가구 교환하듯 바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산다는 것'은 그렇게 교환가치로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내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고쳐 쓰는 것이 맞다. 그것이 삶을 안정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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