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Nov 24. 2023

모르는 번호가 찍혀도 전화받으시나요?

휴대폰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혀 들어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모르는 번호라도 그냥 받으십니까? 아니면 그냥 개무시하나요? 개무시하기에는 찝찝하니 "문자로 주시면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문자전송이라도 해서 발신인 확인을 하시나요?


그나마 모르는 번호라도 010 전화는 받지만 02나 070으로 들어오는 전화는 바로 끊어버리게 됩니다. 대부분 보험 권유나 정치 설문조사 및 상품 광고 전화일 거라는 경험 때문입니다. 070 전화는 사람들이 안 받는 것을 알아챈 상품광고 회사들이 이젠 아예 텔레마케팅 사용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아마 요즘은 070으로 걸려오는 전화가 거의 없음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기 치는 놈들이 저지르는 불법 행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최근에는 사기업체들이 전화번호를 010으로 발신되도록 만들어서 전화를 받도록 하고 있기도 해서 010 번호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내 휴대폰에 입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일단 한번 거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반 고객의 전화응대를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이 모르는 전화번호가 걸려와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직업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받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고민들은 보이스피싱과 같이 전화를 이용한 사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세상이 하도 흉흉하여 벌어지는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받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단순히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사기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일까요? 물론 전화를 받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바로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불안'이나 '공포'와는 달리 두려워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두려움(fear)은 "위협이나 위험을 느껴 마음이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입니다. 불안(不安 ; anxiety)은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지만 원인이 막연하고 애매한 경우입니다. 공황장애가 막연한 불안입니다. 공포(恐怖 ; horror)는 "두렵고 무서운" 것이지만 아주 특별한 극한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두려움은 생명 진화의 과정에서 포유동물이 지닌 형질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은 피식자"라는 것입니다. 포유동물 중 갯과 동물과 고양잇과 동물을 제외하고 나머지 동물들은 모두 이 육식동물들을 피해 다니고 숨어 다녀야 했던 피식자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 종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생존을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작동했기에 피식자로써 살아남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두려움의 본능이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와 현재에도 작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줄여주는 전화사용법이 있습니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명함을 주고받은 사이라면 요즘은 보통 자기 휴대전화에 저장을 합니다. 상종하지 못할 인간으로 인상을 남기기 않았다면 말입니다. 아니 설사 상종하지 못할 인간이라면 더욱 전화번호를 저장하게 됩니다. 그 전화는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전화번호 목록을 저장하는 이유는 '전화를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안 받기 위해 저장한다"는 역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연락을 하고 전화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문자로 먼저 정중히 처음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 정도를 문자로 보내놓는 것입니다. 상대방도 내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을 했다면 이름이 함께 뜰 것이니 누구의 전화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빨리빨리 소통하고 소식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던 전화가 이렇게 한 단계 더 거쳐서 소통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의 고리를 무난히 확장하려면 치르게 되는 의례로 받아들이면 속 편할 듯합니다. 상대가 느낄 두려움을 미리 제거해 주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간혹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서 입력되었던 전화번호가 모두 사라졌을 때 난감함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요즘은 휴대전화에, 한 사람의 모든 행적과 인맥, 신용카드 사용 등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휴대전화를 분실하거나 하면 사회생활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클라우드에 전화번호가 자동 저장되도록 하기도 하지만 이런 백업장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꼰대세대에게는 암울한 세상살이가 전개될 수 있습니다.


휴대폰 전화번호부가 재생되지 않으면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가 와도 전화번호만 뜹니다. 무작정 받기에도 불안하고 안 받자니 또 실례가 될 것 같아 불안합니다. 친한 친구로부터의 전화인데 전화받고 "누구시지요?"라고 묻기도 민망하고 참 난감해집니다. 아주 친한 사이라면 전화번호 데이터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면 양해를 할 것이지만 오랜만에 전화한 관계라면 서운해지고 섭섭하게 느낄 것입니다.


이제는 휴대전화를 잘 관리하는 것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지름길이 되고 있습니다. 제 전화번호를 혹시 지우신 것은 아니시지요? 아예 안 받으려고 못 지우고 계시다고요? 그럼 차단시켜 놓으셨나? 전화를 안 받으시던데? 나는 주변에 두려움을 주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잘 살펴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쳐 쓰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