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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6. 2023

인간은 '미래를 현재로 당겨 사는 종'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와 사는 종'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모두 현재를 산다. 뭐 현재를 잘 사는 것을 삶의 최종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긴 하다. 인간도 동물 종 중의 한 갈래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살고 있다. 현재 다음이 미래라는 선형적 순서에 얽매어 헷갈리고 있을 뿐이다. 삶에 시간적 순서를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접근 자체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삶의 끝이 있기에 시간상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다고 상상하고 예측하고 확신을 갖고 있어서 빚어지는 착각일 뿐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예측(豫測 ; predic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측은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헤아려 짐작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하는 것도 직장을 가야 한다는 예측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샤워를 하고 셔츠를 고르고 목도리를 할까 코트를 입을까 망설이는 것도 나의 옷 입는 맵시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 예측하고 고르는 행위다. 식사를 하는 행위도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배고프고 창의적 생각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바탕에 깔려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예측하지 않고 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행하여 습관이 되어, 예측하고 행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예측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데이터를 모으는 수단으로 모든 감각기관이 동원된다. 모듈로 브레인에 차곡차곡 쌓아서 지식의 곳간을 채워나간다. 이 지식의 곳간에 얼마나 많이 데이터가 들어있는지가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한다. 쌓아놓은 지식을 통합하고 융합해서 적절히 빨리 꺼내 잘 배치하는 것을 예측을 잘한다고 하고 똑똑하다고 한다.


예측의 최종 목표는 안정성이다. 위험, 불확실성, 두려움으로부터의 안전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조차 안정에 대한 예측의 발로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힘들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결국 안정적인 생존에 예측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생명은 한치도 죽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을 살아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머리 쓰는 것을 예측이라 하는 것이다.

예측을 못하는 사람을 정신분열, 조현병 환자라 한다. 조현병 환자에게  착시현상 인지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pH9dAbPOR6M)인 아인슈타인 가면을 보여주면 오목한 뒷면의 얼굴이 나와도 움푹 파인 얼굴 형상을 그대로 인지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볼록한 면의 얼굴 가면을 천천히 돌려 오목한 얼굴 면을 보는 순간 다시 볼록한 얼굴형태로 바꿔 인지하게 된다. 바로 예측이다. 사람의 얼굴은 코가 튀어나왔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형상을 기억하지, 코가 뒤로 들어간 얼굴 형상은 상상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바로 조현병 환자는 감각을 따라가고 정상인은 예측을 따라갔기에 그렇다.


예측할 수 있으면 피해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 예측능력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인간의 이 예측능력도 자전하는 지구에 적응한 현상적 진화의 한 단면이다. 피식자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개발해 발달시킨 생존도구다. 낮에는 감각기관을 통해 위험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위험이 감각적으로 감지되면 도망갈 수 있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밤에는 사정이 다르다. 감각기관을 아무리 동원해도 위험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 청각과 후각을 동원해 보지만 낮의 시각보다는 불안정하다. 결국 머릿속으로 예측할 필요성이 생겼다. 부스럭거리면 일단 도망하고 본다. 부스럭 거리는 것이 사슴인지 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는 예측이 선행되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설사 사자가 아니고 사슴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건졌고 사자였는데 피했다면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예측은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현대를 사는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이 예측을 더욱 정교히 다듬을 필요가 생겼다. 온갖 도구도 즐비하다. chatGPT도 있고 인터넷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어떤 정보가 결정적 지식인지를 간파해 내는 것도 적절한 예측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관건이 된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가장 빠른 예측방법이다. 이미 인류의 석학들이 구축해 놓은 지식의 토대를 밟고 올라서라는 것이다. 멘토로 삼아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기만 해도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지식들을 줍줍 할 수 있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세상 고민을 다 끌어안을 필요가 없다. 눈을 들어 돌아보면 이미 누군가가 그 고민을 해결해 놓고 있을 가능성이 더 많다. 내가 못 찾았을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미래를 당겨와 예측을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살아내는 곳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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