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Dec 12. 2023

두개골 밖의 브레인

브레인은 두개골에 갇힌 깜깜한 감옥 속에 존재한다. 갇혀 있기에 외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감각기관을 통해 일부 세계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일부만 가지고 재조합하여 외부의 전체 모습을 그려낸다. 인지적 오류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브레인을 두개골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깜찍한 발상을 해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브레인이 직접 만나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브레인이 자연 그대로를 인식할 수 있을까? 피부호흡하듯 브레인의 바깥 세포들을 외부 세계와 만나게 하면 두개골에 갇혔을 때와는 어떻게 다르게 세상을 인식할 것인가? 두개골 안에 있을 때보다는 좀 더 정확히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물론 두개골을 걷어내고 브레인이 외부세계와 만나게 진화되지 않았기에, 두개골 밖의 브레인은 생각할 수 조차 없지만 상상이니까 만들어내 보자.


하지만 지금 두개골 안의 브레인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지금 브레인의 모습은 두개골에 갇혀있는데 최적화된 상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는 물컹물컹한 두부형태의 뇌의 안전성이 걱정이다. 감각이나 생각, 인지는 다음 문제다. 일단 뇌가 물리적으로 살아있을 수 있어야 한다. 물컹물컹하면 도저히 외부 환경을 이겨낼 수 없다. 어디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쩔 것이며 잠을 잘 때는 또 어떻게 뇌를 잘 건사할 것인가? 차라리 두개골을 다시 만들어 집어넣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단 생각으로까지 미친다.


겉으로 드러난 물컹물컹한 뇌를 보호할 새로운 진화를 했을까? 뇌의 겉 표면을 외부 환경에 버틸 수 있도록 단백질을 변형하여 케라틴 구조를 입혔을까? 아니면 외부 온도 변화에 적응하도록 털을 다시 입혔을까?


뇌의 모습 또한 밖으로 꺼내놓으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두개골 크기에 맞추느라 잔주름을 무수히 만들어 구겨져 있지만, 밖으로 꺼내놓으면 일단 두개골 크기 때문에 제한받던 용적률을 무한대로 넓히고 키울 수 있다. 뇌가 커지면 이를 감당할 몸집도 따라 커져야 한다. 


외부세계를 받아들이던 시청각 감각기관도 필요가 없어진다. 브레인이 외부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있는 그대로 직접 받아들이면 될 테니 말이다. 눈과 귀와 모든 감각기관이 없어도 된다.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다. 신체구조에 일대 혁신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를 꺼내놓아서 크기가 커지고 외부세계를 직접 받아들이면 더 똑똑해지고 현명해질까? 


글쎄올시다.

그래서 교활한 인간은 지금의 인체 형태를 유지하면서 브레인을 두개골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실리콘 반도체 칩으로 브레인을 집어넣어 두개골 바깥으로 브레인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감각과, 감각을 종합하여 만들어진 지식을 분리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만든 지식을 자기 브레인에 저장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바깥 브레인에 저장된 무한대의 지식 창고를 어떻게 여는지에 대한 방법만 알면 된다. 열쇠만 있으면 어떤 지식, 어떤 결과, 어떤 상황이라도 두려움 없이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판도라 상자의 열쇠를 쥔 것이다.


브레인은 이제 감각에만 충실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실에 만족하기만 하면 된다. 감각 이외의 나머지는 판도라 상자인 실리콘 칩을 검색하고 물어보면 된다. 점점 감각에 몰입하게 된다. 감각은 응큼한 놈인지라 더 자극적이고 더 센 것을 원한다. 마약이 넘쳐나는 이유다.


두개골 밖으로 꺼내놓은 브레인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렸다. 판도라 상자를 열 열쇠를 몇 개나 쥐고 있는가가 문제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어야 열쇠를 쓸 수 있다. 아무 상자나 마구 열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올 수 도 있다. 


사실 외부 브레인을 통제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하다. 전기스위치를 확 내려버리면 된다. 인간은 지식의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만 쥐고 있지, 지식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쇠를 지식으로 잘못 오판했다가는 빈 깡통요란한 수레가 될 수 있다. 전기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지식과 그 지식을 적절한 조합할 줄 아는 지혜의 균형이 필요하다. 외부 브레인은 보조장치일 뿐이다. 메인 CPU(Central Processing Unit)인 자신의 몸과 정신을 잘 정비해 놓아야 보조장치도 잘 쓸 수 있다. 결국 죽을 때까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공부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너무 자학적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이 삶이고, 산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