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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4. 2023

그럴듯하게

'그럴듯하다(likely)' 


"보기에 꽤 번듯하고 훌륭하다"는 뜻이다.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듣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진실은, 그럴듯해 보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게 뭔 소린가?


'그럴듯하다'의 균형추는 사실의 천칭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사실에 가깝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데 방점이 있다.


그런데 이 정확한 사실이 아닌 '그럴듯하다'에 인간 심리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다.


유용성이다.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인듯한 것, 선택의 시간차에서 한 발 먼저 잡을 수 있는 행동을 유발할 수 있게 하여 생존의 확률을 높이게 된 결정적 판단이다. 빠른 판단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의 유용성은 에러가 생겨서 발생하는 손실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 선택의 순간에 '그럴듯하다'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일을 벌이게 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결론이 어떻게 예상될 것인가를 꼼꼼히 따지고 분석하여 예측자료를 만들고 실패했을 경우의 대안까지 검토하는 경우의 결과는 2가지다. 시도도 못하고 프로젝트가 폐기 처분되거나 시작을 했더라도 속도가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


인간행동학에 있어서 '그럴듯하다'가 갖는 실행력과 실천력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바탕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럴듯하다'가 확신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다. 확신이 있어야 행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그럴듯함'에 끌린다. 그럴듯해야 멋져 보이고 그럴듯해야 예뻐 보인다. 심지어 그럴듯해야 돈도 있어 보인다.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것의 대명사가 '사기(詐欺 ; fraud)'다. 언변으로 속이는 거지만 가장 그럴듯해야 속아 넘어간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면 황당무계한 질문을 던지는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기에 홀딱 빨려 들어간다. 최면에 걸린 듯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잘 봐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럴 듯'하기에 걸려든 것이다. '그럴듯하게'가 나쁘게 사용된 전형적인 사례다.

'그럴듯함'은 비합리적 정서다. 사실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그럴듯함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합리성이 약간 결여된 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이 '그럴듯함의 비합리성'이 확신을 가져오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기억의 출발이다. 그럴듯하게 기억을 왜곡시킴으로써 일관성을 확보하여 이득을 획득했다. '그럴듯함'은 가성비가 아주 좋은 유용성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럴듯함'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듯함'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키워드였다.


우리 주변의 '그럴듯함'은 모든 곳에 적용되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인간의 대표적 창작물인 소설은 모두 '그럴 듯'하기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소설이 그럴듯하다는 것은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설정이나 배경들과의 조화가 마치 실제처럼 잘 꾸며져 있다는 뜻이다. 그럴듯하지 못한 소설은 읽을 가치가 없다. 그럴듯한 것이 가치의 판단으로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그럴듯하다'는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작동한다. 꼭 인간사회의 결혼풍속도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들이 화려하게 치장하는 이유도 바로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본능'으로 작동한다.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는 것이 생식 능력하고는 크게 연관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화려하고 멋지고 예쁘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표일 수 있지만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는 아니다. 


'그럴듯하다'가 갖는 의미와 가치는 이렇게 생존 본능과 맞닿아 있다. '그럴듯하면' 일단 하고 봐야 한다. '그럴듯하면'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 선택을 하는데 '그럴듯함'은 시간을 줄여주는 타임머신이자 생존을 가능케 하는 열쇠다. 


그렇다면 어떻게 됐든 '그럴듯하게' 보일 필요가 있다. 비록 눈속임일 수 도 있지만 그럴듯해 보여 속아 넘어가는 상대가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나쁜 의도가 있는 '사기'는 빼고 말이다. 어떻게 다들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나오셨나요? 많은 비가 내린다는데 트렌치코트 깃을 올려 그럴듯하게 보이시나요? 그렇게 그럴듯하게 하루를 보내보시지요. 그럴듯하게 착각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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