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Dec 22. 2023

추억의 종무식

2023년도도 오늘을 포함하여 딱 열흘 남았습니다. 365일 중 355일을 달려왔네요. 오늘까지 오는 동안 숨도 차서 잠시 쉬는 날들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살았고 잘 버텨냈다는 증표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감사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모두 지금 있는 환경과 조건이 다르지만 그 모든 상황과 조건의 근본에는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그 어떤 악조건이나 호조건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렇게 시간에 선을 그어놓고 숫자를 부여해 날짜라는 개념의 의미를 부여했지만, 시간이라는 놈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가 아니기에 변하는 현상에 빗대어 유추를 합니다. 늙는다고 하고 사그라든다고 하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현상이 되어 존재로 형체를 입습니다.


참! 많은 기업들이 오늘 종무식을 하고 이번 주말부터 신년 1일까지 열흘을 쭉 연휴로 쉰다고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전사적으로 다음 주 화/수는 근무를 하고 목요일, 금요일을 연차휴가 처리하고 1월 1일까지 모두 쉽니다. 근래에는 연휴 중간에 끼여있는 샌드위치 데이는 무조건 전 직원이 연차휴가 처리를 하고 쉬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휴가일과 근무일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강당에서 모여서 하던 종무식과 시무식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실 종무식의 모습은 코로나 팬데믹 전에도 조금씩 사라져 왔습니다. 전사적으로 근무일 마지막 날에는 오전에 업무 처리를 끝내고 오후 2-3시쯤 강당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전 부서 직원들이 한꺼번에 모이기 힘드니 부서별로 간단한 다과를 차려놓고 사내방송을 통해 경영층 격려 메시지를 전하고 종무식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경영층들이 회사 건물 전 부서를 돌며 한 해 동안 수고했다고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하고는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이 있었던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던 것이 코로나 펜데믹으로 모이는 것 자체가 안되던 시절을 맞이하고는 전 직원이 모이는 종무식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팬데믹이 끝났지만 한번 사라진 행사를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기업은 역시 효율성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최근 분위기를 보면 눈치챌 수 있습니다. 예전 꼰대들 시절처럼 으쌰으쌰 하고 술 권하고 어깨동무하고 동질성을 확인하던 그런 문화가 아니라는 겁니다.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자기가 속한 조직에 해가 되지 않는 일원으로서의 역할로 회사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함께 모인다는 것이 아주 드문 행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전 직원들이 모이는 전사적 차원의 큰 행사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지 직원들의 화합을 위한 행사가 줄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규모로 더 자주 모이도록 유도되고 있습니다. 패밀리데이, 해피아워 등의 행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직원들을 참여시키고 동일성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종무식과 시무식은 '대나무 마디'와 같이 회사 업무의 매듭 같은 역할을 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종무식을 했다고 하면 한 해를 잘 정리한 듯한 기분을 갖게 됩니다. 실적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한 해 동안 벌이고 진행했던 일과 업무에 대한 최종 마무리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새롭게 맞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아쉬움도 있을 테고 홀가분함도 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 됩니다. 부족했던 것은 내년에 좀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다짐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맺고 끊는 행사나 시간이 없어지면 상황이 두리뭉실해집니다. 한 것도 아니고 끝난 것도 아닌 것 같은 찝찝함이 남는 것 같습니다.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다 끝내지 못하고 남겨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든 한해의 마지막에 서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짧게나마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정표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야 한 해를 돌아보고 잘한 것은 격려하고 설사 잘 안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내년에 더욱 도전해 볼 만한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올해 남은 열흘동안 마음속 종무식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신지요? 쉬는 연휴 동안에는 내년 1년 동안 해야 할 일, 맞이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시고 달력에 표시를 해보시지요. 계획하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하게 되고 해내게 됩니다. 오늘까지는 올해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고 내일부터는 내년을 계획하는 시간으로 삼아보시지요. 연휴 동안 어디 따뜻한 온천이라도 가서 몸 담그고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하 16도조차 반가운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