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Dec 21. 2023

영하 16도조차 반가운 이유

공동체 생활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많은 관습, 법, 규정, 규칙들을 만들었다. 모여 살고 있으니 서로 불편하지 않고 얼굴 붉히지 않을 정도의 예의 예절을 지키자는 것이다. 하다 하다 안되니 "법대로 하지"라는 말까지 한다. 법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기본 룰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놈의 법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성향이 강하다. 세상에 완전한 평등은 없다. 포유류들의 기본 성질이 모이면 위계를 만들어 서열을 잡는 것이다. 완력의 서열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의 서열이다. 세상에 평등은 환상일 뿐이다. 평등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평등의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공산주의가 처참히 무너졌던 것도 이데아 이전에 본능이 우선함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차별을 없애려고 했는데 더 큰 차별을 만들고 계급 서열을 만들었다. 체재유지를 위해 더 강력한 계급의 경계를 만들고 감시하는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망했고 그것이 인간사회다.


줄 세우는 본능은 학습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생물학적 본능으로 보는 게 맞는 듯하다. 인간 군상 중에서 여러 제도와 법, 체제 등은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본성에 근간을 둔 관습 같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결혼 풍습과 같은 관혼 상제 같은 것이다. 물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방법들을 섞여 변하기는 하지만 그 틀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결혼 안 하고 후세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사이에 서열을 정하는 본능은 생물학적인 것이다. 서열을 정해야 효율이 생기고 서로 편하기 때문이다. 서열 속에 균형이 상존하는 것이다. 각자 가진 역량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힘센 놈이 계속 힘을 써서 제압한다고 하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힘은 무리를 이끌 때 먹이를 잡고 다른 무리의 상대와 대적할 때 앞장서서 싸우는 데 사용하면 된다. 힘이 부족한 존재들은 그 밑에서 보좌하면 된다. 무리가 생존해 가는 방법이다.


현대 문명으로 넘어와서도 이 근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우두머리 없는 조직은 없다. 없으면 만들어 세우고 추대하여 그 자리에 앉히고 완장까지 채워준다. 사바나의 사자 무리나 열대우림의 침팬지나 빌딩 속 인간이나 도찐 개찐이다. 잘났다고 으스대봐야 그놈이 그 놈이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서열 세우기를 차별로 동급화해서는 곤란하다. 서열은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능력에 따른 배분이다. 옳고 그름의 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순위의 변질을 막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돈과 권력의 서열이 개입되면 무소불위가 되기 때문이다. 깝죽거리는 졸부들의 행태가 그렇고 권력을 쥔 천박한 인물들의 망나니 칼날이 그렇다.


본능을 억누르게 하는 것이 교육과 학습이다. 서양은 일찍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통해 가진 자들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경계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돈 있고 권력 있는 놈 중에 못되고 사악한 놈도 부지기수다. 그 경계를 살얼음판 걷듯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대중을 위해 봉사하고 펼쳐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 현재 대부분 나라들이 지향하고 있는 공화제 체재의 사회 현상이다. 인간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노숙자, 빈민처럼 '있지만 없는 존재'의 숫자를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의 공동 노력이 시스템적으로 살아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연말이면 이웃 돕기 성금을 모으고 이름 없는 독지가가 놓고 간 현금 뭉치에 눈물 글썽이는 감성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 경제적 빈부의 격차다. 가진 자는 기꺼이 조금 더 내어놓아 평균을 올리는 일에 기여하면 된다. 많이 가진 자는 그만큼 많이 노력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 잘 만나서, 사업 펀딩을 잘해서, 작전주 주식을 잘 사서 그랬을 거라 비난하고 욕해봐야 소용없다. 못 가진 자의 화풀이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부를 축적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출 것인가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질 것도 없다.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 부족함을 충족함으로 채워 나가는 과정. 그것을 산다고 한다. 욕심부리지 마라. 사는 동안 다 얻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다. 지금 가진 것, 지금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면 된다. 어쩌겠는가? 이 아침 내가 눈뜨고 영하 16도의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것조차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 죽은 자가 그렇게 보고 싶고 누리고 싶어 하는 오늘이다. 지금 나는 그 속에 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겨울 운동 요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