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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1. 2024

"이제 집에 가실 수 있어요"

"왜 왔는지 아시죠? 이제 집에 가실 수 있어요"


어제 요양급여 46억 원을 횡령하고 마닐라로 도주했던 전직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1년 4개월 만에 체포될 때 경찰관이 한 말이다.


보통 용의자나 피고인을 체포할 때 고지한다는 미란다 원칙(Miranda Rights)은 영화 속에서도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익숙하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하지만 이런 장황한 문장보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로 등장하는 박중훈이 "너 같은 새끼한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어. 응? 응? 그리고... 그다음은 생각이 잘 안나 씨발놈아. 나중에 판사가 물어보면 들었다 그래 무조건 응? 이 씨발놈아!"라고 말하는 대사가 더 쏙쏙 들어온다.


물론 체포 당시 경찰관이 이 미란다 원칙도 고지했겠지만 "이제 집에 가셔야죠!" 한마디가 용의자의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문장이다. 1년 반을 도망 다니며 마음 졸었을 범인의 긴장감을 한 순간에 무너트렸을 것이 분명하다.


말이란 이런 거다.


"이제 집에 가실 수 있어요" 한마디는 용의자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아는 무지의 소산이 횡령을 하게 만들었고 그 돈으로 해외에 나가서 살면 잘 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엔 항상 불안이 지배했을 것이 틀림없다. 46억 원이란 돈을 해쳐 먹었을 때는 그따위 알량한 불안감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횡령한 돈을 여유 있게 써가며 필리핀 상하의 태양 아래서 선탠을 하고 희희낙락할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은 알 거다. 훔친 돈이라는 것을. 밤만 되면 허무해지고 불안해져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마약과 섹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그것이 범죄의 세계이고 결말이다.

용의자의 이 심적 불안 상태를 한마디로 잠재운 것이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 집이 교도소 될 수 도 있고, 살던 고향집일 수 도 있고, 도망쳐온 나라 한국일 수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불안의 늪에서 벗어나는 순간, 바깥의 모든 환경이 집이 된다. 횡령 용의자는 앞으로 평생 교도소에 들어가 있어도 행복해할 것이다.


"이제 집에 가실 수 있어요"라고 말한 경찰관은 정말 범인의 심정을 읽어낼 줄 아는 심리학자나 다름없다. 권총으로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는 것보다 심리적 마음을 묶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고 있는 경찰관이다. 노련한 경험의 경찰관임에 틀림없다.


적재적소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주 평범한 문장이지만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유능한 경찰관이라고 해도 살벌한 범죄의 현장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범인을 놓치거나 할 수 도 있기에 기계적으로 대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체포 현장의 그 긴장된 순간의 와중에 말 한마디로 용의자의 심정을 무너트려 체념하게 만드는 화술은 태권도 8단보다도 강력한 힘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황판단도 중요하지만 자꾸 해봐야 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말도 계속해봐야 는다. 수많은 상황과 접해보아야 "아 이럴 때는 이런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나타나는구나"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말의 세계, 언어의 세계에서도 경험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는 핑계일 테지만 영어로 말할 일이 없기 때문인 것과 같다.


어찌 됐든 집으로 끌고 온 용의자는 횡령한 돈을 교도소에서 평생 갚도록 해야 한다. 탄광에서 노역으로 횡령한 액수만큼 석탄을 캐도록 해야 한다. 횡령한 돈을 이자를 붙여 모두 상환할 때까지 말이다. 국내에서 300억 원 이상 횡령한 사람은 모두 집행유예로 죄를 사면받았다고 한다. 많이 해 먹을수록 치외법권에 살 수 있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죄에 대한 벌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중형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천문학적 돈을 말아먹고도 멀쩡히 사회에서 숨 쉬고 있는 놈들도 모두 다시 잡아다가 강제노역을 시켜서라도 갚게 해야 하는데 --- 기본이 서지 않으면 사회가 바로 설 수 없다. 46억 원을 횡령한 보험공단 직원도 300억 원 이상 횡령하지 못했다고 한탄하고 있을까? 이런 더러운 세상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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