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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2. 2024

정보는 디테일해야 힘을 갖는다

어떤 업무나 사람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일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란 무엇인가? 어떤 목적에 맞게 잘 정리된 자료다.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적 특징인 키, 몸무게, 외향을 비롯하여 출신학교, 전공분야, 직업, 기타 관심사, 가족관계 및 친구 구성 심지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어떤 브랜드의 차종인지까지도 세세히 알고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운동이 골프인지, 등산인지 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자라온 가정환경이 어땠는지, 그래서 심성은 어떤지, 인품은 어떤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나 그 사람에 대해 좀 알아"라고 할 수 있다.


명함 주고받고 악수 한번 했다고, 점심 한번 같이 했다고, 골프 한번 같이 쳤다고 마치 상대방을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하수의 장황설이자 영업술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잘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일견 맞는 듯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사기를 당하기 가장 쉬운 사람들이 이 속담을 믿는 사람들이다.


정보(情報 ; information)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더 세밀하게는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는 명확하다.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 가치의 척도를 제시할 수 있게 한다.


"태양은 크다. 뜨겁다"라고 하는 문장 속에는 어떠한 정보도 담겨있지 않다. 태양 반지름은 얼마나 되는지, 온도는 몇 도인지, 우리 은하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지구와의 거리는 몇 km나 되는지, 거느리고 있는 행성은 몇 개인지를 알아야 비로소 태양의 존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제야 지구와의 크기 비교가 가능해지고 지구 생명의 어머니가 태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보란 그런 것이다.


그럼 간단히 태양의 정보를 나열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태양의 정보는 몇 개나 되는지 확인해 보자. "아! 뜨거워"의 감탄사 이외에 태양에 대해 알고 있는 숫자를 써보자.


"태양의 지름은 140만 km 정도로 지구 지름의 대략 100배 정도. 질량은 지구의 대략 30만 배. 지구와의 거리 1AU는 1억 5천만 km. 이글거리는 표면온도는 약 5,500도, 수소가 핵융합하며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빛을 내고 있는 주계열성 항성. 태양의 나이는 대략 46억 년. 태양의 불이 꺼질 떼까지는 50억 년 정도 남았음. 태양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은 8분 19초"


천문학이나 물리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태양에 대한 몇 가지 숫자적 정보라도 알고 있어야 그다음으로 지구와의 관계로 엮어낼 수 있다. 낮과 밤이 어떻고 덥네 춥네 해봐야 인문학적 언어 감정일 뿐이다. 어떤 비교도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그다음 정보가 만들어진다. 감정만 입혀진 태양이나 달은 시나 노래에서는 낭만적 기능을 하겠지만 구체적 정보로 존재를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기능도 감지할 수 없다.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는데 숫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구중력 가속도가 9.8m/s2임을 알아야 로켓의 힘을 얼마로 할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있다. 사과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인문학의 발로이 긴 하지만 그 단계를 뛰어넘어야 달로 화성으로 갈 수 있다. 숫자가 정보다.


인문학인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사는 나라 지명과 인물과 역사 연도가 전부다. 역사공부는 이 세 가지를 엮어, 시간이라는 역사의 연도에 인물과 장소의 공간을 날줄과 씨줄로 비단을 짜는 일이다.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한 영화 '서울의 봄'도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날의 숫자와 그날을 살고 버텼던 쿠데타 세력 전두환 일당과 이를 진압하려던 장태완 사령관 측의 숨 막히는 사건이 펼쳐졌던 서울이라는 장소가 변주해 낸 드라마다. 사람 이름을 모르고는 왜 그런 일을 주도했는지 알 수 없으며 연도를 모르고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보려는 야심을 품게 만든 정치상황을 모를 수밖에 없다. 이 연도와 사람이름과 장소를 모르고 영화를 보면 "재미있네" "답답했네" "열받네" "황정민 연기 잘하네"수준 정도밖에 할 말이 없게 된다.


정보에 예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데이터를 많이 안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데이터의 연결고리를 잘 꿸 줄 알아야 한다. 흩어져있는 데이터를 가공하여 흐름을 만들고 정보로써의 가치로 환생을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숫자에 민감해야 한다. 축구에서 이긴다고 하는 것도 숫자를 말하는 것이고 돈이 많다는 것도 액수를 말하는 것이다. 추상의 가치에 물든 호모사피엔스의 업보이지만 자연의 흐름조차 반도체의 0과 1의 숫자만 가지고도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세상을 살고 있다. 데이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정보가 세상을 보여주는 시대다. AI가 그렇고 대화형 인공지능이 그렇다. "모든 것은 수(數)다"라고 말한 2,600년 전 피타고라스의 일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세상만물의 근원이기에 영원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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