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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0. 2024

겨울바다를 보는 시선

겨울바다.


시와 노래에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옷깃사이사이로 파고드는 찬 바람과 시퍼렇다 못해 검게 넘실대는 망망대해,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발밑을 잡아채는 모래사장의 푹신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어놓는다.


하지만 여행자의 시선일 뿐이다.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피해야 할 바람이고 빠지지 말아야 할 물이고 거칠지 않아야 할 파도일 뿐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과 심성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만큼 다르고 다양해진다. 그래서 시의 원천이 되고 노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구구절절해질 수 있고 마음을 아리게 할 수 도 있으며 가슴 벅차게 할 수 도 있고 차가운 바닷물에 손끝이 트는 눈물 나는 현장이 될 수 있다. 


특히나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에는 해돋이를 보러 많이들 동해로 간다. 한해를 다짐하는 데 있어 첫 해돋이의 의미를 담고 수평선 끝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마음을 다잡고 결심하는 분위기를 잡는 데는 최적이다.


하지만 겨울바다는 한적하고 쓸쓸하다. 뺨을 얼얼하게 하는 바닷바람의 맹기를 피하기 쉽지 않다. 차라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따뜻한 히터바람 나오는 차 안에서 눈의 시선으로만 대양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게 더 오래 머무는 길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에게는 겨울바다 보러 가는 걸 추천하고 싶지 않다. 많은 걸 내려놓고 머릿속을 비우려 갔다가 오히려 더 우울해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감정을 자극하고 주도하는 환경에 따라 내 심성과 감정이 요동치는데 그 파고의 주파수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 환경이 나의 감정 상태를 지배함을 눈치채야 한다. 겨울바다와 나의 교감이 나의 감정을 만든다. 외부 환경은 그대로지만 그 자연환경에 내 심상을 덧칠하는 일이다. 겨울바다를 감정에 물들이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야 겨울바다가 가슴에 들어오고 파도소리가 들리는데 음률과 리듬의 높이까지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 가면 시선은 수평선을 향해 고정된다. 겨울바다를 보러 왔다는 당위성 때문에 발생하는 시선의 붙잡힘이다. 수평선을 향한 시선의 방향 때문에 자연과 심성의 연결이 외골수가 되어버린다. 수평선을 향했던 시선의 방향을 뒤로 돌려 해안가 언덕으로, 발밑의 모래로, 그리고 사구 주변에 움츠리고 있는 색 바랜 이름 모를 잡초와 파도에 떠밀려온 조류의 녹색에 눈을 돌려보면, 바다가 빚어낸 자연의 속성을 오롯이 볼 수 있다. 뒤돌아 보지 못했고 내려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수평선만 바라봤기에 '물' 하나만 보는 외눈박이가 되어 버렸다.


겨울바다를 노래했던 김현식, 박인희, 김학래 각각의 가사와 음률도 전통적인 발라드에 쓸쓸함, 외로움, 고독, 떠남, 이별 등의 언어가 차지하고 있다.


바다만 바라보면 오로지 검푸른 물만 보인다. 단조롭다. 간혹 튀어 오르는 물고기가 있을까만은 언감생심이다. 갈매기 몇 마리 끼룩대는 정도가 단조로운 바다의 풍광에 고춧가루처럼 끼어든다. 수많은 노래와 시의 시선은 바다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렇다.


눈의 시선을 뒤로 돌리면 물의 힘이 만들어낸 장엄한 해안 절벽이 보이고 그 위에서 생명을 피워낸 무수한 식생의 초록색도 보인다. 발밑의 모래 위에 무수히 쓰여 있었을 연인들의 하트 표시와 사랑의 글귀들이 지워졌던 흔적도 감지되어 보인다. 쓸쓸한 겨울바다의 풍경이 아닌 다이내믹한 생명의 공존장소임을 알아채게 된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평소에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어야 시선이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알아야 어떤 것을 잡아챌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냥 "아! 좋다." "시원하잖아" "가슴이 뻥 뚫리는데"정도의 감상만 내뱉으면 그 수준에 머물 뿐이다.


검푸른 바다의 끝없는 물웅덩이를 보러 가보자. 산과 건물의 높이에 막혀 좁아져 있던 시선을 펼쳐볼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물만 보지 말고 발밑의 조개껍데기를 주워 체온을 전달해 보자. 깊은 바다의 평온함과 탄산칼슘을 조합하여 딱딱한 갑옷을 만들고 있는 생명의 처절함과 장구함과 연속을 느껴보자. 그래야 겨울바다에서 사랑을 읽을 수 있고 연인의 주머니에 같이 맞잡은 손길이 얼마나 따스한지 알아챌 수 있게 된다. 겨울바다는 차갑고 쓸쓸한 곳이 아니고 따뜻한 사랑을 눈치채는 곳이다.


ps. 겨울바다를 노래한 여러 곡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김학래의 '겨울바다'를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wjJ4idLNzx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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