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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8. 2024

실패에 관대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있을까?


실패(失敗 ; failure)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좌절하게 된다. 다시는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과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실패보다는 작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실수(失手 ; mistake)를 할 때도 거의 대동소이한 감정을 갖게 된다. 두 단어 모두 나쁜 상황의 전개를 전재로 두고 있다. 원하는 대로, 계획했던 대로 일이 진행이 안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상태를 말하니 당연히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다.


사업을 하거나 연구실험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 바로 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조언이다. "과감히 밀어붙여!" "다시 또 일어나면 돼" "실패를 겁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용기를 주는 좋은 말이긴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크게 힘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는 실패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사회에서 매장되어 아예 고개 들고 사회에 다시 등장할 수 없게 된다. 유명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이런 연유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문화를 양산하는 주범은 황색저널리즘의 일부 언론과 이를 이용하는 일부 파렴치한 정치 검새들이라고 본다.


어떻게든 실수와 약점을 잡아 상대를 흠집 내 끌어내리기 바쁜 사회는 항상 그 모양 그 꼴로 살 수밖에 없다. 정치판이 거울이다. 저질문화의 사회가 아닐 수 없다.


돈을 벌어야 살아남는 기업으로 넘어오면 더욱더 실패에 대해 가혹해진다. 기업에서 사업의 실패는 곧 망했다는 뜻이다. 망해서 혼자만 정리하면 되겠지만 그동안 살아남고 버티느라 끌어드린 주변 사람과 타 관련 업체까지 줄줄이 끌고 들어가니 문제다. 그래서 더욱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사업을 함에 있어 실패와 실수라는 단어는 아예 없는 단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시작한 사업이나 프로젝트는 성공해야 하기에 무리수를 두고 강행하게 된다. 중간에 수정이나 방향전환, 포기가 잘 안 된다. 그동안 들인 돈과 공이 얼마인데 쉽게 발을 뺄 수가 없게 된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모두 이루어지고 모두 성공할리 만무하다. 실패를 보정해 나가는 과정이 삶이고 사업이고 프로젝트다. 완벽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완벽히 준비한 다음에 일을 진행하면 이미 늦는다. 대강 적당히 계획이 서면 시작을 하고, 하는 과정에서 조정을 해나가면서 완성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어떤 일에 실패해 본 사람이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실패를 해봤기에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실패하지 않는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패했던 사례를 제외하니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실패한 부분을 해결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밀어주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에 책임을 물어 사퇴시키거나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한다. 책임을 지는 게 아니고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사회다. 다음 사람이 뒷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오류의 시간이 두배로 걸린다. 아주 비효율적인 사회다. 이런 비효율성이 반복되는 사회다. '책임자 사퇴하라'는 데모현장의 단골문구다. 재난이 반복되고 똑같은 일이 계속 번복된다.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를 고치고 시스템을 점검하고 전문인력을 충원해 관리하는 일까지,  한 사건에 대해 정리가 되고 백서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책임자를 세워놔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 물러나게 하는 게 순리에 맞다.


어떤 일에 대한 실패와 실수에 관대해질 것인지는 조금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업에 실패하여 돈 떼먹고 도망간 놈에게 까지 관대할 필요는 없다. 정치적 이권에 개입해 해처 먹은 놈들에게 까지 관용을 베풀 필요는 없다. 실패에 관대와 관용은 미래지향적인지, 사회에 공헌하는 정도에 바탕을 두는 것이 맞다. 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우주선을 보내기 위해 행해지는 많은 연구와 실험에서는 당연히 수많은 실패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래 인류의 행보를 위한 도전이기에 지속적인 기술개발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인류의 건강을 책임질 바이오산업도 그렇고, 인간사회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생성형 AI의 개발 분야도 그렇다. 


실패한 것을 숨기면 안 된다. 실패한 사례와 데이터를 감추거나 성과를 돋보이는데 집착하여 변형을 하면 안 된다. 날 것 그대로를 드러내고 보여줘야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실패를 재현하지 않는다. 과학 분야에서는 명확히 이 룰이 지켜지고 있다. 발표한 자료를 시연하여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가를 보면 되기 때문이고 우주선이 달이나 화성에 안착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이나 사업 경제 쪽으로 넘어오면 실패를 인정하는 사례가 거의 없고 자료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들의 진행하던 사업들이 무수히 실패하고 사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실패 사례가 정리된 자료 찾기가 어려운 이유다. 기업 마케팅 비밀이라는 단속에 묶여 발전을 못하는 것이다. 결국 계속된 똑같은 실패의 반복이라는 쳇바퀴를 돌게 된다. 알면서도 안 고쳐진다. 아니 고칠 수가 없다. 그것이 우리 기업,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실패와 실수에 관대해질 수 없는 이유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헤매고 허덕이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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