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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9. 2024

소크라테스에게 너무 쫄지 말자

소크라테스, 공자, 맹자, 석가모니, 예수에게 쫄지 말자.


아니 이런 불경스러운 망발을 하다니 ㅠㅠ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일견 불경스러울지 모르나 인류사적으로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 접근하면, 남들보다 조금 더, 아니 아주 많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해답을 제시한 선지자일 뿐이다. 그것조차 제자들과 호사가들이 살을 붙여 미화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개인적 가설이자 관점이니, 신앙심이 깊은 분께서는 죄송하지만 너무 역정 내지 않으셔도 된다.


그렇지만 한 번쯤 그냥 인간적으로 바라보면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다가 죽었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나머지는 기타 등등 그렇고 그런 일상을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건방 떠는 관점이 아니다. 제대로 위인들을 공부하지 않았고 겉만 보고 얄팍한 지식으로 둘러대는 수준일 수 있다. 온 인류가 추앙하는 선지자들에 대한 모독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 믿음보다는 한번 뒤집어 보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할 뿐이다.


지금 현재 2024년을 사는 현대인의 관점과 시각으로 2,500여 년 전 선지자들의 행적을 바라봐도 당연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과 답변의 현명함을 보여줄 뿐이다. (죄송하다.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로 인해 표현이 거칠고 위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옹졸하여 글의 가치가 전혀 없을 수 도 있음을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다. 불경 서적 한 권 완독 한 바 없고 구약 신약 성경 끝까지 완독 한 적 없으며, 사서삼경, 논어조차 끝까지 독파해 본 적 없다. 그저 주워들은 몇몇 문구만으로 외눈박이 해석을 하고 있음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다. disclaimer를 미리 걸어 양해를 구한다.)


얄팍한 지식으로 한번 들여다보자. 석가모니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글을 써서 책이나 경전을 전하지 않았다. 오직 말로써 강연을 설파했을 뿐이다. 지금 후세의 인류가 보고 있는 경전들은 모두 제자들이 기술한 글들의 유산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플라톤이 있었고 석가모니에게는 아난다가 있어 자기가 들었던 부처님의 법문을 그대로 암송했고 대부분의 불교경전 첫 시작이 여시아문(如是我聞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으로 시작하는 이유다. 성경도 예외 없이 후대 제자들에 의해 써졌다. 

이들 선인들이 글을 몰랐을지 만무하지만 직접 글을 써서 전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직접 글을 써서 전해주었더라면 더 정확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깨달음과 지식을 알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너무도 위대한 것을 깨달았기에 바로바로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글 쓸 시간이 아까워서였을까? "소크라테스는 책이 기억력과 사고력을 감퇴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쓰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자의 전파력에 대한 파급력 평가가 고대와 현대가 다를 수 있음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직접 듣는 것과 써놓은 글을 읽어 본질을 파악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직접 듣지 않고 책으로만 볼 때는 자기의 경험과 생각으로 책을 재해석해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이것을 선인들은 경계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너무 현인들의 현란한 미사여구에 기죽지 말고 쫄지말자. 그들은 인터넷을 알 턱이 없으며 휴대폰과 인공위성, 내비게이션이 뭔지도 몰랐고 달과 화성에 물이 있는지는 까마득히 몰랐을 뿐만 아니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인간다운 삶, 윤리,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선한 방향을 제시한 인본주의의 관점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했을 것이다. 현명한 선지자임에는 틀림없고 존경해 마지않고 나아가 숭배받을만한 것 역시 틀림없다. 그런 견해와 관점, 일상과 삶을 살만한 인류는 흔치 않을 것이고 유일무이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다 간 2,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을 능가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인류가 추앙하는 선지자들은 모두 기원전 500년경부터 예수 등장시기까지 모두 나왔을까? 대략 그 500년 동안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모두 그 시기에 인류의 지적혁명이 일어났을까? 그것도 전혀 문화적 교류가 없는 동서양에서 비슷한 시기에 말이다. 인간의 두뇌를 자극하고 머리를 빨리 돌게 할 어떤 대기 환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현재까지 인류 사상사에 큰 기둥인 석가모니(기원전 560년-480년), 소크라테스(기원전 472-399년), 공자(기원전 551-419년) 맹자(기원전 372-289년), 예수(기원전 2-서기 30년) 모두 이 시기에 등장했다. 도시와 문명의 발달이 비슷하게 일어나 발전했기에 인류의 정신세계도 비슷하게 성장했을 거라는 학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인듯하다.


고대 선인들에게 심오하고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버려보자. 사람관계를 잘 유지하고 삶을 건강하게 살기 위한 촌철살인의 대화와 경전 문구들이 있지만 곱씹어보면 그렇고 그런 내용이다. 지금 2024년에는 오히려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서 화성 표면을 굴러다니게 하고 있는 기술 과학자들을 더 경이롭게 바라볼 일이다. 투명한 화면의 TV를 만들고 휴대폰으로 실시간 통역을 해서 대화를 하게 만드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선인들의 현명함에 비견하건대 빠지지 않는다.


인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역사는 그 시대의 산물이다. 사상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맞는지 끄집어내어 털어볼 일이다. 먼지 나는 경전 문구에 원리주의자처럼 맹신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그 당시 유효했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지는 않을 수 있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유효하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너무 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2,500년이나 지나왔고 2,500년전 사람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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