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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2. 2024

날씨로 보면, 대한민국 참 넓습니다

월요일입니다. 출근은 무사히 잘하셨습니까? 아직도 출근 중이시라고요?


서울 사대문 안쪽 시내는 아침 7시 현재 영하 8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눈은 아직 내리지 않고 있고요. 바람이 조금 많이 불어 체감온도가 낮습니다. 전철역까지 걷는 5분여 시간 동안 귀가 시릴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수도권과 강원 내륙지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 추위에 대한 주의를 주고 있군요.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있으니 따뜻하게 채비하시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발도 덜 미끄러운 것으로 잘 챙겨 신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 내려진 한파주의보는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도 10도 이상 내려가 3도 이하이고 평균값보다 3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지거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가 이틀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그리고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내려집니다. 한파주의보보다 한 단계 위인 한파경보는 영하 15도를 기준으로 합니다.


이 아침 이렇게 날씨중계를 하는 이유는 조금 일찍 출근길에 나선 지인들이 여기저기 카톡방에 도로사정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당, 용인지역에서 출근하는 지인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고 현지 통신원처럼 도로사정을 알려주고 있고요. 그나마 지하철로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시내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창밖을 보며 아직 눈소식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날씨에 대한 관점으로 보면 대한민국도 대단히 넓은 나라로 보입니다. 직선거리로 보면 20km 내외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내리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아직 눈 올 기미도 없이 멀쩡한 곳도 있습니다. 온도까지도 2-3도 차이가 납니다. 지형지물에 따른 자연적 조건과 인간 군상이 모여 내뿜는 열기의 양에 따라 변화가 반영된 결과이지만 다양한 분포범위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자연현상조차 엄청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땅덩어리 큰 미국사람이 한국에 와서 살면서 이해 안 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뉴스시간 끝에 전하는 '오늘의 날씨'시간에 "내일은 전국이 맑고 화창하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전국에 비나 눈이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불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이랍니다. "어떻게 전국에 비나 눈이 한꺼번에 내리지?"라는 궁금증이랍니다. '전국'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미국처럼 동부에서 서부까지 비행기를 타고도 5시간 이상 가야 하는 나라의 규모로 보건대 "미국 전역에 눈이 내린다는 정보는 들어 본 적도 들을 수 도 없을 테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날씨 예보가 정교해지고 도시별 온도까지도 전하고 있어 이런 두리뭉실한 '전국적' 표현은 듣기 힘듭니다. 기상청 전매특허인 "곳에 따라 비나 눈"이라는 표현도 이젠 거의 듣기 힘든 용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지난 주말, 40년 지기 대학 친구 5명과 함께 강원도 양양에 있는 리조트에서 총지배인으로 있는 친구를 만나러 다녀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같이 모였습니다. 토요일 양양으로 가면서 동해안 지역에 폭설이 예보되어 은근 걱정들을 하면서 출발을 했습니다. 원주에 있는 친구를 픽업하느라 중부고속도로 - 광주원주고속도로를 통해 원주에 들렀다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쪽으로 향했습니다. 원주를 지나 횡성 진부까지는 쌓인 눈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산꼭대기 북쪽 사면에만 녹지 않은 눈들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태백산맥을 지나는 터널들을 하나 둘 지나면서 눈들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대관령 터널을 지나 본격적으로 동해안으로 내려가는 중턱에는 말 그대로 눈부신 설경이 펼쳐집니다. 한 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고속도로 제설작업은 정말 잘해놓았습니다. 도로에 눈이 쌓이거나 얼어있는 구간은 전혀 없습니다. 설국 속을 유유히 배회하다 강릉 쪽으로 내려오니 눈이 비로 바뀝니다. 해안가 도로변은 눈이 전혀 없습니다. 눈과 비의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오묘한 현상을 경험합니다.


폭설 예보로 한층 긴장해 있던 마음이 다소 편안해집니다. 머릿속에는 하얀 설국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렇게 주말 내내 강원도 태백산맥 산간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현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불편하고 생계에 지장을 주는 눈이었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장관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일요일인 어제 서울로 돌아오면서 또다시 설국의 풍광을 마주했다가 눈이 하나도 쌓이지 않아 황량한 풍경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잔과 대화가 밤새 리조트 방 안에서 펼쳐지고 장문밖으로 펼쳐진 설국이 무대배경으로 펼쳐져 보이는 무릉도원의 풍경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입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땅도 꽤 큼을 날씨로 실감하고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물리적 크기와 심리적 크기는 이렇게 큰 격차를 보이고 있음도 직감합니다. 날씨란 지구 표층 높이 10km 이내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대기와 대륙과 대양의 순환 과정일 뿐이지만 거기에 영향을 받고 그 안에서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도 알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니고 그저 눈이 오면 기뻐하기도 하고 길 막힐까 봐, 차 미끄러질까 봐 걱정하기도 하는 것의 연속이고 변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운 친구들이라도 자주 보고 자주 만나고 자주 소주잔 부딪히며 사는 것이 눈 내리고 비 오는 자연과 만나는 것과 같음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날씨라는 현상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연의 부산물 뿐일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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