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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4. 2024

여행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경험들이 있으시죠?


특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여행길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한국말조차 반가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국말하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지만 그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강한 유대감이 느껴지고 국뽕까지 일어납니다. 생경한 장소에서 느끼게 되는 막연한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 편안함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안도감에 불을 지피는 사례가 바로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가까운 지인일 경우입니다.


저는 이렇게 외국여행길에서, 국내 여행에서 가깝게 알고 지내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마당발이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들 다 가는 여행지다 보니 만나게 될 확률이 높아서 그런 이유가 있겠지만 대단한 인연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해석을 해보겠습니다.


당장 지난 주말만 해도 그렇습니다. 양양에 있는 리조트에서 총지배인으로 근무하는 대학친구를 만나러 동창 5명이 모여 폭설이 내리는 설경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리조트로 들어가기 전에 점심시간이라 양양 전통시장 근처에 있는 동일식당에 가서 곰치국을 먹기로 했습니다. 양양에서는 나름 유명세가 있는 곰치국 전문식당이라 손님이 제법 많습니다. 메뉴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손님들이 계속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여러 손님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입니다.

같이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들어옵니다. "어! 임 과장님! 여기서 보네요" "어! 안녕하세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이런 우연의 확률이 있을까요? 사무실에서도 책상이 멀리 떨어져 있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참인사 외에는 한마디 건네기 힘든데 이렇게 사무실을 벗어나, 그것도 서울을 벗어나 멀리 양양의 식당에서 점심때 만나다니 말입니다. 여직원께서는 양양솔비치에 가족여행을 가끔 오는데 올 때마다 동일식당에 곰치국 먹으러 온답니다. 그날도 어머니와 남편이 동행해서 같이 왔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면 반가움이 배가 됩니다. 전혀 예측하지 않았는데 발견하게 되는 경외감입니다.


여행지에서 이런 우연한 지인들의 만남 중에는 두바이 아쿠아리움 앞에서 만난, 회사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여직원도 있습니다. 그 여직원도 가족여행을 왔다는데 세상에나, 두바이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괌에서는 같은 호텔에서 대학동창을 만나기도 했고 심지어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대학동기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그냥 얼굴만 알고 말을 섞어본 적이 별로 없는 긴가민가한 관계라면 "누구지? 어디서 본듯한데?"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수준에 그쳤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가깝게 연락하고 알던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오래전에는 가까운 대학친구 2명이랑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가 사직구장에 롯데 야구게임하는 거 보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부산의 롯데 야구팬들의 부심은 대단합니다. 저는 딱히 좋아하는 야구팀이 없긴 하지만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응원하는 모습이 은근히 보고 싶기도 해서 갔습니다. 관중이 꽉 차서 정신없는 틈새를 비집고 그나마 세 명이 앉을 공간을 찾아 통로를 헤매고 있는데 앞쪽에서 대학 선배와 딱 마주쳤습니다. 학교 방송국 선배셨는데 고향이 부산이셨습니다. 졸업하고 거의 연락을 못하고 있었는데 야구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3만 관중 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짓고 살면 안 되고 못된 짓하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조심해서 살아야 하고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반가운 얼굴이어야지, 외면하고 회피하는 사람이거나 멱살 잡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반응 속에 드러납니다. 타인의 얼굴 속에 사는 게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우연한 마주침이 반가움이 되도록 사는 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테니 말입니다. 우린 어디서 우연히 마주쳐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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