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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6. 2024

혼자 여행의 진수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으신가요? 국내 지방이 되었든 멀리 해외여행이 되었든 말입니다.


제 주변에는 홀로 여행하는 사람이 꽤나 있습니다. 가까이는 제 큰 딸아이도 있고 막내 녀석도 있습니다. 큰 딸아이는 해외를 다니는 게 직업인지라 그런가 보다 합니다만 누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막내 녀석도 지난여름 방학 때 혼자 동유럽 5개국을 한 달간 혼자 다녀왔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불안감이 앞섭니다. 같이 갈 친구들도 없냐? 고 동행자를 물어봐도 시간도 맞지 않고 같이 가면 서로 부담스러워 혼자 떠난답니다. 그렇게 잘들 돌아다니다 옵니다.


오히려 저는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결혼하면서는 회사 출장 이외에는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은근 혼자 떠나가보고 싶기도 한데, 특히 아이들이 가족으로 등장하면서 혼자 여행 가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책임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매년 한두 차례 떠나는 해외여행은 항상 가족여행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부터는 얘들이 머리 컸다고 같이 안 가겠다고 해서 부부여행으로 규모가 축소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글의 화두는 '혼자 여행할 때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편안하고 흥미진진한 잔잔한 흥분이 다가오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던져봅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여행사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걸 마치 혐오하듯이 바라보는 시각이 있음을 눈치챕니다. 자기 혼자 잘할 수 있는데 굳이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고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해외 가서도 한식 먹으러 따라다녀야 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일정 내내 같이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일 겁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외국인들과 의사소통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큰 장점들을 지녔습니다. 그만큼 꼰대세대들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질 수 있는 호기가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젊은 층들의 해외여행 패턴을 보면 좀 단순한 면이 보입니다. 물론 여행을 떠나는 젊은 층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름 계획을 짜고 공부를 하고 준비를 많이 합니다. 당연합니다. 생소한 곳을 찾아가는데 그냥 달랑 항공권 하나와 숙소 예약만 해서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보다는 타인에게 자랑하는 소재로 쓰는 경우가 더 많은 듯 보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기타 카톡방을 통해 '나 여기 갔다 왔다'를 보여주는 겁니다. 여행 중이거나 다녀와서 멋진 풍광, 맛난 음식 자랑하고 보여주어 대리만족을 하게 하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이유가 됨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현지를 보는 시각이 사진 뷰 파인더에 고착되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검색하고 조사하면서 자료를 모으게 되는데 대부분의 자료들이 여행정보에 대한 자료가 차지합니다. 현지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맛집들은 어디에 있는지, 볼거리들은 뭐가 있는지, 요즘 핫한 클럽은 어디 있는지, 인피니트 풀이 있는 멋진 리조트는 숙박료가 얼마나 하는지 등등입니다. 구글맵에 찾은 장소들을 모두 표시해서 입력을 시켜놓고 일정의 동선을 짭니다.


여행정보를 모으는 구글링을 제외하고 여행하려고 하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인물, 지리적 배경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거나 책을 산 적이 있으신가요? 저만 해도 거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냥 돌아다녔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돌아다닌 거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아 거기 좋았어. 멋졌어. 최고야" "에이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야. 너는 거기 가지 마" 정도의 피상적인 감상밖에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디테일한 감상을 못 내놓는 이유는 사전 지식이 없기에 비교할 대상을 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행에서도 철칙처럼 등장합니다.


여행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혼자 여행하면 불안하고 쓸쓸하고 외로워집니다. 현장에서 생소한 것과 생경한 사람을 마주하는 불안감이 스릴로 느껴지고 그 기분을 느끼러 갈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가면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유서 깊은 역사적 장소에 가서 유적지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정신 팔릴 것이 아니라 유적지 계단에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바위를 보고 올리브 나무를 보는 게 진정한 여행이 됩니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걸었을 수 도 있는 거리와 고흐가 별빛 쏟아지는 생레미의 밤하늘을 바라봤을 그 하늘을 보는 일입니다. 그 거리에서 소크라테스를 보지 못하고 그 밤하늘에서 고흐를 보지 못하는 것은 사전 지식을 입력하지 못했기에 벌어지는 공허함입니다.


"머리 복잡하게 그걸 왜 알고 가야 하는데? 그냥 편하게 다니고 맛난 거 먹고 편하게 쉬다가 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알고 가면 여행에 절대적 고요와 침묵이 왜 필요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안다는 것의 힘은 여행에서도 절대적 권력으로 작동합니다.


여행정보는 인터넷 창고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창고를 뒤져 정보를 골라내서 분류를 하고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보고 확인하는 겁니다. 그 거리를 걸었던 2,500년 전 로마 사람들을 보고 콜로세움의 글레디에이터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500년 전과 지금과 같은 것은 하늘의 구름과, 바위와 올리브나무입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무대를 재구성할 수 있으려면 우두커니 밴치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됩니다.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 인화지에 담기보다는 온몸으로 이미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침묵의 힘만이 그 장면을 포착해 낼 수 있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전혀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이 알고 가야 합니다. 서원에서 글을 읽고 있는 유생들의 목소리를 담 넘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서야 서원의 마룻바닥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원 앞뜰의 배롱나무 붉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 공부하여 알고 가면 그만큼 더 많이 볼 수 있게 됩니다. 사전 지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으면 최소한 현지의 도슨트를 통해 압축된 정보를 듣는 것도 방법입니다. 비싼 돈을 쓰고 귀한 시간을 쓰는데 알차게 보고 듣고 확인해야 함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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