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Feb 01. 2024

속지 않으려면

천지만물, 물리세계를 넘어 인문의 영역을 말할 때도 기본 명제는 관계(關係 ; relation)다. 둘 또는 그 이상이 서로 연결되어 얽혀있다는 것이다. 존재를 규정하고 대상화하는 첫 번째 관점이다. 세상에 유일무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의 관계는 개념을 정의한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움직임이라고 하고 시간과 사물의 관계를 변화라 하며 거리와 시간의 관계를 속도라 한다. 또한 기억과 기억의 관계가 시간이고 감각과 기억의 관계가 지각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환경이다.


눈치챘겠기만 관계는 반드시 둘 이상이 있어야 성립한다. 그런데 세상은 그냥 홀로 존재할 수 없기에 엮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존재의 기본 속성이다.


하지만 이 관계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인과와 상관의 관계다. 상관과 인과의 관계는 철학적, 인문학적 용어인 듯 하지만 이미 가설을 검증해야 하는 통계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과학적 논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론적인 사전적 의미지만 짚고 넘어가 보자. 상관관계(相關關係 ; correlation)는 "둘 중 한쪽이 변화하면 다른 쪽도 같이 변화하는 관계"를 말하며 인과관계(因果關係 ; causation)는 "한 사물 현상이 다른 사물 현상의 원인이 되고, 그 다른 사물 현상은 먼저 사물 현상의 결과가 되는 관계"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무수한 착각과 오류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사이비 과학과 우매한 신념으로까지 이어진다. 사실 상관과 인과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하나와 둘과의 관계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수많은 변수가 얽혀있어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현상을 설명하기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같은 현상을 놓고 해석이 달라진다. 좌와 우가 생기고 보수와 진보가 생긴다.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 속성이 들어오면 얽히고 꼬여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되어버린다. 오히려 현상의 본질은 간단할 수 있는데 해석이 분분하여 배가 산으로 간다. 나중에는 본질과 현상은 사라지고 엉뚱한 감정싸움으로 가고 법으로 가늠해보자고 한다. 그때는 이미 강 건너갈 배도 필요 없다. 강이 말라버렸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다시 홍수가 나면 또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현상에서 상관관계는 영원히 윤회하는 서클이 된다.


관계로 돌아가는 세상사에서 상관관계는 항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과로 발생하는 사건적 현상이 있다면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좋은 일이면 권장하고 부추겨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세력도 있다. 아니 뭣도 모르고 자기에게 유리하니 마구 질러댄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면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럴듯하여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책상 위에 놓인 꽃 화분에 매일 "예쁘다"라고 속삭여주고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꽃도 잘 핀다는 실험 증거들을 들이대며 과학적 사실이라고 우기는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화분의 꽃이 잘 피는 것과 음악은 인과 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에 있을 뿐이다. 매일 예쁜 말을 하고 음악을 틀어주는 주인장이니 관심을 갖고 물도 주고 햇빛도 보게 했을 것이 틀림없기에 꽃이 생기 있게 되었을 뿐이다. 꽃 화분의 오류는 아주 간단한 팩트 하나를 간과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식물은 소리를 듣는 신경세포가 없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알면 따지고 말고 할 일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해서 벌어지는 과학적 판단 오류는 수없이 많다.


관계를 판단함에 있어 전후좌우를 살피는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사물의 현상에 대한 관계를 해석하는 데에도 편차가 심한데 복잡한 사람 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제대로 보는 시선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세상은 다층적이고 다원적이며 다양하다는 기본 생각을 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양자역학의 세계처럼 결과를 알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처럼 결론을 보여주지만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는 혜안은 상관과 인과를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세상이다. 두 눈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고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한다. 사설에 휘둘리지 않고 정론을 찾아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헛된 잡설을 늘어놓는 마기꾼들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친구'와 '아는 사람'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