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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2. 2024

편협과 왜곡을 깨는 법

나는 무엇을 잘못 보고 있는가?


세상을 보는 눈의 창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가? 그 시선의 창문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나를 규정하는 가치체계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편향된 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왜곡된 생각을 하지는 않는가?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는지, 자체를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는가? 알았다면 어떤 노력과 공부를 통해 왜곡을 바로잡으려고 했는가?


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는 더욱 그렇다. 중간점검을 하지 않으면 한 소리 또 하고 또한 소리 계속하는 꼰대로 낙인찍힌다. 왕따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바로 인지의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체험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아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심리학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정서적 장애로써의 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의 개념을 조금 더 확장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왜곡까지도 왜곡의 개념에 담아보면 그 경계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중 인지왜곡은 살고 있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눈만 뜨면 눈앞에 산악지형이 펼쳐지는 곳에 사는 사람은 바다의 광활함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바다에서 철썩이는 파도의 장엄함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깊은 산속의 꽉 막힌 거리감에 답답해할 것이다. 두 사람이 사는 자연환경은 두 사람의 거리에 대한 개념 자체를 다르게 심어놓는다.


나만해도 그렇다. 거리 단위에 대한 개념을 확 바꾸게 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피 끓는 청춘이었던 20대 후반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를 갔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시다시피 영화 '라라랜드'의 촬영지였던 곳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LA 도시의 끝없는 지평선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마어마하다는 개념을 그때 깨달았다. 산속 분지인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눈만 뜨면 보이는 산들이 하늘과 만나는 경계선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먼 거리에 대한 잣대였다. 그런데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내려다보는 광활한 지평선은 거리와 크기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선양으로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만주벌판의 옥수수밭 전경 또한 크기와 넓이의 개념을 깨는 경험이었다. 동네에서 밭 1천 평 가지고 있으면 "와! 좀 사는데" 정도이고 1만 평 정도의 논을 소유하고 있으면 동네 유지정도는 될 수 있다. 그런데 비행기로 10분을 넘게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옥수수밭의 주인장은 대체 얼마나 부자인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저 끝도 안 보이는 옥수수 밭을 어떻게 파종하고 어떻게 수확할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다시 한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되짚어 보게 된다.


세상을 보는 나의 창문 크기를 다시 가늠해 보는 것이다. 작으면 작은 대로 살 수 있고 크면 큰 대로 살 수 있긴 하다. 그렇지만 작은 크기를 점점 크게 키워가고 알아가는 희열을 놓쳐서는 안 된다. 크기의 다양성을 아는 순간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기고 이해가 수반된다.


인지공간의 왜곡을 깨닫는 것은 외부 세계를 용광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샐러드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녹여서 하나 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다양성이 섞여있는 조화가 세상을 볼 때는 더욱 풍성한 재료를 제공한다.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히고 높일 수 있는 단서들이 널려있음에도 외면하고 귀찮아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부지런히 여행을 통해 다양성을 경험해 보고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들어봐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불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나의 생각도 위치를 잡을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 무조건 배척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샐러드볼안에서 색깔별로 버무려져 있어야 제대로 된 샐러드가 된다. 양배추만 있고 당근만 있는 샐러드볼은 당연히 맛이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봐도 그것이 진짜인지 모르는 경우다. 가치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내가 보는 판단의 기준이 좁고 작아서 그렇다. 편협된 것이 무엇인지, 왜곡되게 입력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고 수정해 나가는 일, 그것이 평생 자기의 가치를 만들고 자기의 존재를 규정하는 일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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