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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5. 2024

글을 쓰다 잠시 뒤돌아보다

오늘로 다음 브런치 스토리에 쓰는 글이 843번째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하는 2020년 2월 말에 시작했으니 만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대략 1년에 200개가 넘는 글들이 업로드되었다. 주말이나 공휴일들은 쉬고 가끔 땡땡이로 쉬고 하다 보니 듬성듬성 채워진 듯하나 그래도 웬만하면 평일의 매일 아침을 글과 마주했다.


사실 아침글을 써온지는 20년 가까이되는 하루의 루틴이었다. 기업 홍보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덕에 이어져온 업보일 수 있다. 그래도 이 덕분에 2년 전에는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책도 한 권 엮어냈다. 그 연장선상에서 쓰인 글들의 숫자가 842다.


다음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기 전에는 이메일로 보내거나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지인들에게만 공개하던 글이었는데 브런치 스토리 덕분에 만인에 공개하는 일기장이 되어버려 쑥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글은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글의 말투가 조금 직선적이었든, 가끔 욕을 섞어 써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었다면, 브런치 스토리에 쓰게 된 다음부터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에세이가 아무리 개인의 생각을 엮어내는 글의 전개라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글에 대한 비평의 수준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힐난을 하는 수준의 댓글들을 받아보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글 중간중간에 disclaimer를 걸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다른 의견이라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전제사항이자 용서를 구하는 방패막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쓴 842편의 글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가 뭐였는지 떠올려보니 '다양성'이 첫 번째 단어인 듯하다. 그리고 ' 공감'과 '공진화' '우주의 나이 138억 년, 지구의 나이 46억 년'이 뒤를 잇고 있다.


주제와 키워드는 글의 흐름을 끌고 가는 중요한 수단이자 평소 생각을 담고 있는 우물과 같은 것이다. 우물에 물이 마르면 아무리 두레박을 내려봐야 헛수고만 하는 셈이다. 우물을 채우는 평소의 지난한 공부와 사유와 관찰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물을 채우는 일을 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쓰이지 않음은 당연하다. 세상에 공짜로 화수분처럼 글이 써지는 경우는 절대 있을 수 없다.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사유를 얕게 하면 글의 수준도 딱 거기까지밖에 못 보여준다. 세상의 철칙은 글 쓰는데도 어김없이 동급으로 적용된다.

내가 쓰는 글의 흐름을 이루고 있는 주제가 자연과학과 관련되어 있음 또한 평소 관심사와 생각의 줄거리가 자연과학공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봄 시즌에는 '137억 년 우주의 진화' 가을 시즌에는 '뇌과학"을 각각 주말마다 10주 정도 오프라인 강의에 참석하고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zoom으로 3시간 정도씩 온라인 강독에 참여하고 있다. zoom 강의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계속되고 있으니 거의 150회 이상 진행되고 있고 오프라인강의도 10년 세월을 참여하고 있다.


아직도 주변인으로 빙빙 돌며 자연과학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있는 지진아 수준이긴 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도 읊는다는데 그래도 10년 세월을 기웃거리다 보니 가끔 글의 주제나 키워드들이 공부시간에 주워들은 것들로 채워질 때가 많다. 훔쳐 쓰고 있음도 시인한다.


" 왜 매일 글을 쓰느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받는다. 글을 쓰면 명료해진다. 상황을 정리하게 되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다양성'이 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다층적, 다원적, 다차원적으로 엮여있는 것이 세상사라는 것도 글을 쓰면서 눈치챈 현상이다. 그렇게 알고 나면 나도 옳고 너도 옳고 모두 옳아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다 옳은데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현상은 어찌할 수 없다. 그렇지만 화나는 현상조차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진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수 도 있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뜨끈 미지근하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살다 보면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흘러가는 게 좋은 것이고 그것이 산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 들면 보수화되어 간다는 관념의 전개가 나에게도 진행되고 있음에 화들짝 놀란다. 나는 그런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강박관념처럼 가지게 된다. 매일 글을 써서 정화를 하고 고해성사하듯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 내가 나를 고치지 않고 내가 나를 바꿔나가지 않고 안주하면 글 쓰는 것조차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촌철살인의 깨어있음이 있으려면 끊임없는 관찰과 지속적인 공부가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지식과 사고가 편협되지 않고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신독(愼獨)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다그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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