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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2. 2020

작은 변화로 밝은 내일을 맞으라

요즘 매일 뛰는 아침 조깅 코스를 오늘은 바꿔 봅니다. 그동안 집에서 갔다 오면 정확히 10km 거리인 망우리공원을 뛰었는데 오늘은 뒷산인 봉화산 둘레길을 뛰어보기로 합니다. 봉화산 둘레길은 5km 정도 되어 망우리공원을 갔다 오는 거리의 정확히 절반 거리입니다. 지난해에는 가끔 주말마다 이 봉화산 둘레길을 뛰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처음 뛰어 봅니다. 한 8개월 정도 이 코스를 안 다녔더니 그동안 둘레길바닥을 정비하여 나무 계단을 놓은 곳도 여러 구간 있습니다. 다니기 좋게 잘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흙길이라 미끄러워서 내리막길에서는 조심스레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젠 서울시내 곳곳에 산재한 공원이며 낮은 뒷산의 산책로들도 예쁘게 가꾸어놓아 정말 산책하기 좋은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네 사람이 아니라 모를 뿐입니다. 지자체들이 이런 편의시설들은 정말 잘 만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둘레길을 뛰러 봉화산 공원길을 오르는데 길옆으로 덩굴장미가 빨간 색깔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미를 보자마자 기억은 그 장미를 따라 국민학교 시절 교실 화병에 가져다 놓았던 바로 그 장미가 오버랩됩니다. 기억의 시간은 40년을 훌쩍 뛰어넘어 불현듯 다가오는데 이 기억의 기재는 뭐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휴업으로 쉬고 있는 요즘 출근 때 시간과 똑같이 일어나 조깅으로 아침을 시작하면서 생긴 여유로 인해 머릿속이 맑아져서 그럴까요?  장미의 빨간색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시간여행의 창구로 작동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으로 기억이 떠오르고 조합을 합니다.

정확히 중구난방입니다. 기억은 무작위로 떠돌아다니는 펄스를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기억을 잡아채는 '기억의 파리채'는 바로 관심입니다. 한 순간 눈에 확 띄는 그 무엇, 들리는 그 무엇, 코끝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바로 머릿속을 떠도는 저장된 기억의 펄스와 비슷한 주파수를 맞출 때 푸득푸득 되살아나는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산만하게 생각하고 기억되는 것이 '브레인의 기억 발현 기재'일 것입니다.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을 포유류의 생존 조건상 이미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 새롭게 다가서는 위험을 감지하는 일이 중요했기에 우리의 브레인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따라다니느라 산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가 산만하다"라고 걱정할 일이 아니라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으로 이해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다고 산만한 것이 모든 것의 정답은 아닙니다. "주의를 산만하게 살펴 경계를 하고 그중에 집중해서 공략할 것을 찾는 것"이 바로 생존의 길입니다.


이 아침 산만한 기억의 파고 중에서 어떤 것이 각인되어 기억으로 남고 또 삶에 의미로 살아남을까요? 매 순간 수천 바이트의 정보 용량이 눈과 귀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데 어떤 것을 생존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떤 것을 무시하게 될까요? 아니 무시하는 것 같지만 이미 범주화되어 주의 깊게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을 수 도 있을 겁니다.


매시간 아니 매 분마다 아니 시간을 끊어 놓을 수 없을 연속성의 순간들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발췌해 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무의미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의 능력을 키워내야 의미가 다가옵니다. 


의미란 언어의 형상입니다. 언어는 생각의 대화입니다. 생각은 활발한 전자의 교환입니다. 전자의 교환은 파동으로 표현됩니다. 미시의 세계로 접근했다 다시 현실의 세계로 나와 거시의 세계로 나아가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는 우주로까지 인식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사람에게로 귀결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식과 종교와 법규와 삶의 희로애락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들여다보고 멀리 보는 이유는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를 알고자 함이고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함입니다. 137억 년 우주의 역사와 그 안에서 발생한 46억 년 지구의 시간에서 등장한 생명 흐름의 역사가 자기의 존재일진대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아침에 보고 듣고 다가온 모든 현상들에 다시 한번 세밀한 눈을 맞춰 봅니다. 창밖에 들리는 자동차 소리, 비를 머금은 낮은 구름들이 내려온 회색의 하늘, 정지한 듯 하지만 미세히 변하는 사물의 정체, 흰 종이, 움직이는 화면의 검은 점들이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까지 ---


심호흡을 한번 합니다. 오늘도 치열한 삶의 생존 환경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보내겠지만 그래도 한 순간 눈을 감고 깊은숨 한 번으로도 긴장된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 빈자리와 공간을 열렬한 전자의 에너지로 채워넣고 반드시 이 상황을 적절하고 타당하게 헤쳐나갈 수 있음을 자신하면 됩니다. 우리는 바라는 데로 상황을 만들어 갈 것이며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릅니다.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꿈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으며 그것이 잘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밝은 앞길이 보이시나요? 아직 희미할까요? 아니 어두운가요? 희미하고 어두운 것은 횃불을 밝여 거두어내고 장막을 벗겨 햇살을 들이면 됩니다. 횃불을 밝히고 장막을 거두는 일을 하는 존재, 바로 당신 바로 그대 바로 우리입니다. 그래서 내일은 반드시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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