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Feb 29. 2024

정년퇴직 대상자의 심정과 자세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겠지만 올해는 직장생활을 하는 64년생 용띠들이 60세로 정년퇴직하는 해다. 공무원들은 상하반기로 나누어 6월 말, 12월 말로 퇴직을 하지만, 보통 기업에서는 자기 생일달까지 근무한다. 나는 10월생이라 올해 10월 말이 퇴직일이다. 군대 제대날짜 받아놓고 달력에 하루씩 X표시하는 심정이다. 요즘도 회사 인트라넷에 매달 정년퇴직자들의 이름이 뜨는 걸 보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만감 같은 것이 교차한다. 그 퇴직자 명단 속에 아는 이름이라도 있을라치면 더욱 그렇다.


명단 속 이름의 대상자에게 전화를 건다. '회사소식에 이름이 보여서 전화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통화를 시작한다. 다 안다. 왜 전화했는지, 무슨 말을 묻고 어떤 답변을 할지 조차 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명의 선배들이 퇴직하는 것을 지켜봤고 이제 내 나이가 그 대열에 합류를 했다. 그리고 어제 통화한 명단 속 동기처럼 곧 나의 일로 다가올 것이다.


정년퇴직자와 통화하는 일에는 두 가지 감정이 섞여 있다. 반평생 넘게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명예롭게 정년을 맞아 퇴직을 하는 것이니 축하를 해주는 것이 맞다. 다들 알겠지만 주변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흔치 않다. 보통 50대 초반 정도되면 대부분 다니던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 그만두게 된다. 다들 안다. 왜 그만둘 수밖에 없는지. 와중에 나이 60세까지, 회사에 연을 두고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사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퇴직 정년까지 회사 생활을 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보면 성공한 삶을 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의 말보다는 근심과 걱정 어린 말이 먼저 나온다. 퇴직 이후 예상되는 30년 정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의 발로 때문이다. 


"퇴직하시고 나면 뭐 다른 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감?"

"당장은 없어. 그냥 한 서너 달 쉬어보면서 생각해 봐야지. 그동안 정부에서 최대 9개월까지 용돈 삼아 월급(실업급여)을 줄 테니 받아가면서 ---"

"뭐 생각해 놓았던 버킷리스트라도 하나씩 해보는 건 어때?"

"여행도 가고 하겠지만 혼자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닥쳐봐야겠지만 벌써부터 비용 생각도 들고 그래. 마음 추스르고자 여행 가서 돈 쓰면 그 이후엔 뭐 먹고살지 걱정되고 말이야. 하하하"


무엇인가 시도하는데 망설이는 게 퇴직을 맞은 사람들의 기본 생각이자 반응이다.


당연하다. 퇴직자들은 당장 다음 달부터 통장에 정기적으로 찍히는 숫자가 없어진다. 아니 마이너스 숫자로 찍히는 것은 계속 나오는데 플러스로 찍히는 것이 없다. 통장의 숫자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거나 지켜보게 될 당사자의 심정은 숫자가 줄어드는 것만큼 덜컹덜컹 내려앉을 것이다. 위축되고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때를 위해 차근히 준비해 왔을 수 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장생활자들이 그렇지만 자녀들 키우고 일상생활하는 동안 쌓아놓을 여유가 거의 없다. 항상 그렇지만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은 굶어 죽지 않고 기본적인 생명 존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보면 된다. 퇴직금은 보통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애들 공부시키느라 중간정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작지만 틈틈이 개인연금이라도 부어놨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것조차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결국 퇴직과 동시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서 다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보통 퇴직자들의 모습이다.


꼭 먹고사는데 얽매이지 않을지라도,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집을 나올 수 있는 일거리를 찾으라는 선배 퇴직자들의 조언을 듣는다. 어느 순간, 선배 경험자들의 실 사례가 가슴에 팍팍 꽂힌다.

나에게도 다가올 정년퇴직을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해놓고 있는가? 별반 다를 게 없다. 준비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맥 놓고 준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퇴직을 앞두고 경제력 유지 측면과 새로운 일자리 측면 두 가지를 준비해 왔다. 


경제력 측면은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 찾아서 받게 되는 급여와는 별도로 구축할 수 있는 연금 위주로 준비를 해왔다. 퇴직금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4년 전 이미 정산하여 IRP 개인퇴직연금에 넣어놨고 개인연금 계좌도 작지만 30년 넘게 들어 놨다. 국민연금은 2027년 생일달 이후부터 수령이 가능하니 퇴직 후 3년간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그리고 틈틈이 주식에 꼬불쳐둔 비상금 등으로 일단 버티기를 할 계획이다. 그래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수령기간은 10년으로 짧게 잡아 수령하여 받는 액수를 늘릴 예정이다. 70세 이후 다리에 힘 풀려, 어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때가 되었을 때 수중에 돈만 있으면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때 주머니가 넉넉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70세를 넘어가면 국민연금 위주로 생활을 하고 부족하면 아파트를 주택연금으로 전환하여 남은 여생을 메우면 될 듯하다. 그리고 와이프도 평생 학교에서 근무를 해서 공무원연금 대상자이기에 우리 부부의 연금만으로도 그럭저럭 노후생활은 쪼들리지 않고 사는 게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막내 녀석도 올해 대학교 4학년이라 등록금은 회사에서 받을 수 있다. 어디 크게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지 않으면 큰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는 소리다. 평생 살면서 빚이나 대출금도 없다. 나름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쓰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쪼들려 살아온 삶도 아닌 듯하다. 잘 버티고 살아온 삶일 수 있다.


이런 예측 때문에 경제활동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부족했을 수 도 있다. 문제는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일이다. 퇴직 후 일자리는 나에게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질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필요하다. 나름 생각해 놓은 바 도 있고 거기에 맞춰 준비해 온 것도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임도 안다. 그러나 초조해하지 않기로 한다. 무엇이 됐든 할 일은 반드시 있고 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는 연말까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곧 쏜살같이 내게 달려올 시간이겠지만 그 시간을 즐기고 준비하여 기꺼이 맞이할 자세가 되어있다. 아직은 무덤덤하다. 정년퇴직의 그늘이 저승사자처럼 옆에 와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면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감정이 저하되지 않을 것이다. 새롭게 마주할 일에 대한 기대로 가슴떨림이 살아나야 한다. 그렇게 준비하고 맞이할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배우자 생일 챙기기는 1년짜리 보험 드는 일과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