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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7. 2024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곳

가장 짧은 머묾 동안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곳.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이다.


지난 주말을 끼고 5일 동안 다녀왔다. 말이 5일이지 22일(금) 저녁 9시, 서울을 출발하여 라스베이거스 도착 금요일 오후 4시, 서울로 돌아온 것은 24일(일) 오후 10시 50분 라스베이거스를 출발하여 26일(화) 오전 4시 30분 서울에 도착했으니 실제로 미국땅에 발을 디디고 있었던 시간은 2박 3일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비행시간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노선인데 이렇게 짧게 일정을 짜다니, 동남아 가는 것도 아니고 ㅠㅠ 시차적응하다가 비몽사몽 돌아올 가능성까지 잠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듯 나섰던 이유는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 중에 그랜드캐년이 들어 있었고 4 식구가 같이 여행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병행했기 때문이다. 


오는 5월 19일(일), 큰 딸아이 결혼식 일정도 있고 해서 이제 4 식구가 멀리 해외여행을 같이 가는 것은 마지막이지 싶은 초조함이 불을 질렀다. 20년 가까이 매년 4 식구가 1년에 한두 차례 씩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큰 아이가 취업을 하고 막내 녀석도 군대 갔다 오고 하더니 혼자 배낭여행을 한 달씩 가고 가족이 같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끊어진 지 2년째였다. 그런 와중에 마침 큰아이 비행근무 노선이 주말을 낀 라스베이거스행이라 짧지만 온 식구가 같이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2박 3일 일정은 빡세게 짰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오후 4시 이후는 메인 스트리트를, 숙소로 잡은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시작하여 만달레이 베이 호텔과 루소르호텔이 있는 끝까지 걸어갔다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고 새벽 2시에 그랜드 캐년으로 출발하는 마이리얼트립 당일 여행을 신청했다.


그랜드 캐년 투어는 사우스림 야바파이(Yavapai) 지질박물관이 있는 카이밥(Kaibab) 전망대를 시작으로 이스트 림을 거쳐, 컴퓨터 모니터 바탕 화면의 대명사인 홀슈밴드(Horseshoe Band)와 로어 앤텔로프(Lower Antelope) 캐년을 둘러보고 오는 빡센 일정이다. 


그랜드캐년을 여행 버킷 리스트로 간직해 온 심정으로써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지구역사 20억 년의 대지층 트레일 코스를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콜로라도 강물에도 발을 담그고 와야 하겠지만 이렇게라도 갈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나름 그랜드 캐년의 지질학에 대한 공부도 하고 생성원인과 켜켜이 쌓인 지질층의 이름까지도 달달 외우고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먼발치에서 그 장관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랜드 캐년 맨 윗 층에 쌓인 카이밥 지층의 대지를 밟고 손으로 사암을 집어 감촉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지는 여행이다.

그랜드캐년의 광대한 자연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온 토요일 저녁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최고의 건물들과 시설물들을 둘러보고 일요일에는 2023년 오픈해서 라스베이거스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스피어(Sphere)에서 상영하는 영상물을 보러 갔다. 120만 개의 LED로 만들어진 스피어의 외관도 장관이지만 원형의 내부에서 보여주는 다렌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영상 작품인 '지구에서 보낸 엽서(Postcard from Earth)' 영상물은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이 많이 차이가 나는데 2층 중앙석은 169달러, 3층 중앙석은 249달러, 4층 중앙석은 99달러 정도나 한다. 중앙좌석이랑 약간 벗어난 좌석은 79 달러 정도한다. 영상물 상영 1시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고 메인 로비에는 스피어 체험을 1시간 정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메인 영상물 상영 1시간, 체험공간 1시간으로 짜인 프로그램인 것이다. 메인로비 아트리움에는 생성형 AI기술로 보여주는 휴머노이드와 실시간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아바타 영상을 촬영해 주는 공간이 있다. 최신 테크놀로지를 한 번에 볼 수 있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상호 대화가 가능한 로봇의 AI 주제가 수명(Longevity), 생산성(Productivity), 혁신(Innovation) 등이다.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쾌한 방향성의 주제들이다. 생성형 AI 알고리즘을 장착한 휴머노이드들이 실시간 대화를 통해 농담까지 주고받는다. AI기술의 최고 정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꼭 보고 꼭 체험해봐야 할 곳이 스피어가 아닌가 한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다고 하니 카지노에서 돈 많이 따오라는 격려의 문자들이 쌓였지만 가족여행인 관계로 체험 수준으로 슬롯머신에서 맛보기만 해봤다.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의 도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족 체험 여행지로 이미지 변신한 지 오래다. 호텔로비마다 카지노들이 즐비하지만 카지노가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관심거리가 달라서 그렇겠지만 말이다.


라스베이거스 여행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은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다. 세계 3대 분수 쇼하면 두바이, 바르셀로나, 그리고 이곳 라스베이거스 분수쇼를 꼽는다. 3곳 분수쇼를 모두 봤는데 라스베이거스 분수쇼가 가장 초라하다. 예전엔 그 명성을 누렸겠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 정도는 우리나라에도 널린 정도라 할 수 있다. 분수쇼 뒤의 벨라지오 호텔 배경이 장관일 뿐이다.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년 여행을 통해 자연의 시간이 빚어놓은 장관과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이 만들어 놓은 극강의 시설물을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짧은 시간 동안 정들었다보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불빛에 가슴이 찡해진다.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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