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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8. 2020

적응

역대 가장 따뜻한 설을 보냈습니다. 더구나 1월에 맞이한 온화한 설이었기에 '예외적 날씨'의 적용은 합당해 보입니다.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추울 때는 추워야 하고 더울 때는 더워야 함이 자명합니다. 예외의 상황이 닥치면 그 또한 그 상황에 맞추면 되겠지만 평균적으로 '그러하다'라고 명명된 상황의 바탕은 기저에 깔려있어야 예외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너무 생뚱맞은 상황이 닥치면 모든 리듬이 깨지게 됩니다.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설은 늦가을의 인디언 섬머(Indian Summer) 같았습니다. 낮 기온이 영상 10도를 넘나 들었습니다. 한겨울의 이 기온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요? 세상 모든 생물은 기온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생명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가지기 위한 에너지를 어떻게 흡수 보충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생사 여탈권을 기온이 쥐고 있습니다. 뉴톤 역학이 지배하는 거시 세계에서 기온은 에너지 생산의 저변을 관장하는 바로미터입니다. 태양의 광자가 어느 정도 각도로, 어느 정도 시간 동안 비추고 있느냐에 따라 생태계의 등고선을 그어냅니다. 생명이란 그 등고선 안에서 적응하여 살아남는 백척간두의 생존 현상입니다.


바로 환경에 대한 처절한 적응입니다.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에 사는 '스테노 카라'라는 딱정벌레가 있습니다. 이 딱정벌레는 건조한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요? 특히 나무 한그루 없는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물은 어떻게 보충을 할까요? 사막 환경에 적응 진화하여 살아남았습니다.


'스테노 카라'는 날개 덮개에 작은 돌기들이 나 있습니다. 사막의 낮과 밤의 기온차로 이른 아침 안개가 짙게 끼면 스테노 카라는 사막 언덕을 기어올라 바람 부는 쪽으로 물구나무를 섭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작은 돌기에 부딪히면 수증기가 달라붙었다가 물방울이 되어 돌기 사이로 내려오는 것을 받아먹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적응 방법을 알아냈을까요?


궁하면 통한다고 결국 적응한 것들만이 생존하여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현재 환경에 가장 충실히 적응한 개체라는 것입니다. 어느 개체가 조금 더 진화했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의 관점입니다. 식물과 동물과 박테리아까지도 근원은 같았음을 알게 된다면 비교 우열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모두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집에서 우연히 식물의 진화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마지막 내레이션이 "인간은 지금 식물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인간은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곡물을 재배합니다. 씨 뿌리고 거두고 다음 해에 똑같은 일들을 반복합니다. 사실 그 모든 것은 인간이 해줄 것이 아니고 식물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임에도 인간이 행동하여 대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주도하면 수확도 좋아져 효율성 면에서는 탁월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이 식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식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일까요?


인간들은 착각 속에 삽니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압니다. 그러나 자연은 항상 모든 존재에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일어날 수 있는 무한대의 확률을 가지고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눈 내리고 차가운 겨울의 한가운데가 맞습니다. 우리는 이 차가움에 적응하고 이겨내는 그 진화의 경계선에 우뚝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잠시 따뜻함에 현혹되었을지라도 그 따뜻함조차 적응의 폭을 넓히는 유연성의 연장으로 활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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