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y 27. 2024

퇴직자 숨통죄는 세금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부서에 근무하시다 은퇴하신 선배님 몇 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다. 지금은 아예 매월 정례모임이 되었다. 1년에 한두 차례 골프도 치러 다니시고 그 자리를 빌려 세상 돌아가는 일과 은퇴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 게 현명한지에 대한 사례 공유시간이 되고 있어 은퇴를 앞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동냥으로 아주 유용한 모임이 되고 있다.


식사하고 나와서 차 마시는 시간까지 대략 3시간 정도이지만 그 시간 동안 오고 가는 대화의 주제는 정말 다양하다. 어떻게 시간관리와 건강관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그중 십중팔구는 정치인들을 씹는 이야기로 방향 선회를 한다. 각자 정치적 선호 성향이 달라 갑론을박하지만 각자의 주장이 펼쳐내는 스펙트럼의 다양성이 흥미진진하다. "국회의원 300석 중 250석은 없애도 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선배님도 계신다. ㅎㅎㅎ 아나키스트도 아니시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의 종착점은 이념이 어떻게 자유가 어떻고 개소리를 떠드는 정치인 개개인을 씹는 것이 아니다. 좌파고 우파고 중요한 게 아니고 일단 정치를 잘하는 놈이 제일 중요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하는데 그 종착점은 바로 세금정책의 공정성이다. 은퇴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나도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 세금에 대해 고민을 하거나 생각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평생 직장인으로 유리지갑을 넣고 있었던 터라 정말 한 번도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하다못해 국민연금을 얼마나 내는지, 의료보험은 얼마나 내는지조차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저 매달 월급에서 공제하는 세금들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액수의 경중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설사 신경 쓴들 환급받거나 안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런 듯하여 그냥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이번달 국세청으로부터 카톡문자를 하나 받았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거다. 평생 살면서 종합소득세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게 뭐지?" 스팸문자인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자를 확 지워버릴까 하다가 종합소득세가 뭔지 궁금도 하여 여기저기 물어보니 "5월이 종합소득세 신고달이고 급여 소득 말고 다른 돈 버는 일을 한 게 있는 거 같다"는 답변이 왔다. 그제야 지난해 봄 대학원 교수님이 계신 단체에 강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고 받은 강의료가 생각났다.


종합소득세 납부 청구 문자를 열어봤다. 국세 9,100원과 지방세 910원을 납부하라는 통지다. 무엇 때문에 내라는 건지 내역은 없다. 강의료였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청구된 세금의 액수가 적어 찝찝하지만 그냥 온라인 계좌이체를 해버렸다.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도 아니고 겨우 돈 1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세금이라고 더 내면서도 이렇게 찝찝한데 쌩 돈을 몇 백만 원씩 세금으로 내는 은퇴자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그 심정을 지난주 선배님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은퇴자들의 재산은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이 전부이고 연금 이외에는 별도의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건강보험료와 세금은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하는 게 문제란다. 나름 평생을 열심히 살고 저축하여 서울에 아파트 한채 겨우 마련하고 중형 자동차 한 대 정도 보유하고 퇴직연금이랑 개인연금, 국민연금 등으로 60세 이후를 버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벽에 부딪히는 부분이란다. 세금과 건강보험료가, 보유하고 있는 전 재산을 평가하여 내는 것이라 합리적인 부과일 수 있으나 들어오는 현금이 연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다달이 내야 하는 게 문제란다. 결국 현금 유통 창구인 국민연금 받아 건강보험료 내고 고정적으로 나가는 아파트 관리비 등을 내고 나면 달랑 동전 몇 닢 남는 형국이 된단다. 용돈벌이라도 할 일이 있을까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단다.


이런 제길, 60 평생 간 빼고 쓸개 빼고 직장 생활했는데도 결국 다시 생계전선으로 나가야 하는 숙명이 대부분 대한민국 은퇴자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ㅠㅠ


나름 열심히 은퇴 이후 노후를 위해 모으고 연금 들고 주식에도 투자하여 대비를 해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에게 보유한 재산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은 뭔가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이 국민 된 도리이자 나라를 유지하는 근간이기에 그렇다. 세금 징수에 대한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 형평성과 공정성이 문제이고 부과절차가 문제일 거라 생각한다. 


아직 세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 가진 적도 없기에 한심한 시각일 수 도 있다. 이제 곧 퇴직을 하고 내 주머니로 세금 청구서가 날아들어와 봐야 세금의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다들 세금 내느라 은행에서 돈 빌릴 판이라고, 그나마 직장 은퇴자들에게는 아파트 담보대출도 안 해준다는 절망감 섞인 이야기도 들려온다. 세금 내느라 이젠 집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아파트 평수를 줄여야 할 판이라고 자조 섞인 넋두리가 들린다. 그렇다고 아파트 팔면 양도소득세도 내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에이 씨부럴, 상속세, 증여세 안 내고 그 돈으로 이민이나 가볼까 고민하고 두리번거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따뜻한 동남아로 가서 남은 인생 그저 유유자적하며 사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이 이민 갈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볼까? 고민하고 있다"라고 한다. 


세금 내는데도 꼼수와 편법, 탈법이 스며들게 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은퇴 전에 세금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해 놓을 일이다. 이 공부가 세금을 덜 낼 꼼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엇을 어떻게 의식하며 살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