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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28. 2024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인간에게 있어 '잘못'하는 것과 '실수'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사람이기에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데 있어 '완벽'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한의 우연 확률변수로 움직이는 자연에서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확률적 결정론을 들이댄다고 해도 '자아'를 제외한 바깥세상 모든 것은 우연의 확률이자 산물일 뿐이다. 자연 자체가 우연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의 근사치를 찾는다면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만이 해당한다. 현재 이 시간 '나'라는 존재에게만 완벽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 무한의 우연을 뚫고 만들어진 실존이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모습이기에, 감히 '완벽'을 붙여도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존재 모습이 잘못과 실수의 굴레를 반복하며 땜질을 하고 버티며 완벽을 향해 가는 과정을 '살아간다'라고 한다.


그럼 사는 데 있어 '잘못'과 '실수'는 뭔가?


'잘못'은 "옳지 못하게 한 일"이고 '실수(失手 ; mistake)'는 "부주의로 잘못을 저질러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일으키는 행위'다.


단어의 의미가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는가? 옳지 못하다는 데 있다. 옳지 못함은 사리분별이 바르지 못하고 인간의 도덕과 윤리에 어긋한다는 뜻이다. 잘못과 실수를 하면 부끄럽다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 사단(四端)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 ;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 '치지어인대의(恥之於人大矣 ;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은 중대한 일)'라고 했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과 실수를 드러내면 더 부끄러울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드러내면 오히려 부끄러움이 줄어드는 묘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마법 같은 문장이 '내 탓이오'다.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외야 한다.

잘못과 실수를 감추려들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진다. 최근 유명 연예인의 추악한 뒷모습이 그 전형이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위기관리는 초동에 잡아야 한다. 타이밍이다. 위기라는 놈은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다. 그래서 위기다. 이때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벗어나는 지혜는 가리고 감추는 것이 아니고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 괜히 드러내 문제를 키우면 어떡하냐고? 하수와 상수의 차이가 거기서 나온다. 하수는 작은 드러남에 벌벌 떨지만 상수는 작은 실수와 떨림을 딛고 일어서는 발판으로 삼는다. 그것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말이다. 


상황이 벌어지면 당사자의 판단력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주변의 참모들이 상황판단을 잘해서 당사자가 진정으로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게 해야 한다. 수십억 원의 공연료가 걸린 상황에서 관계자들이 실수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손해 볼 것이 뻔하기에 일단 감추고 시간 끌기를 해서 예정된 것들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한다. 돈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적자의 늪이 보이고 파산의 정황이 보이기에 어떻게든 무마하려 든다. 이 생생한 광경이 그대로 생중계되는 현장을 보고 있다.


기업의 온갖 위기관리의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볼 때, 사람의 행위에 대한 위기관리가 가장 어렵다. 사건, 사고가 벌어졌을 때 그 진행경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적절한 대처를 통해 확산을 줄여나갈 수 있지만 권력과 유명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의 행위애 대한 위기관리는 사건 당사자가 가장 중요하다. 주변의 참모들이 아무리 조언을 잘하고 유도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례들을 경험하고 봐왔지만 진정으로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왜? 문제를 저지른 당사자는 그 행위가 그렇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치심도 없다. 오히려 당당해진다. 여론이 들끓고 온갖 언론매체에 도배가 되고 나서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기레기들이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든다고 판단한다. "약간의 실수나 잘못을 할 수 도 있지. 왜 나만 갖고 그래? 내가 그렇게 죽을죄를 졌어?"라고 반문한다. 그다음 레퍼토리는 다들 예상하는 방향대로 흘러간다. 유명세를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조심해야 하는 대목이다.


맹자 왈, "인불가이무치(人不可以無恥)니 무치지치(無恥之恥)면 무치의(無恥矣)니라 ;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도리이고 세상을 사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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