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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30. 2024

대가를 만난다는 것은

세상 살면서 한 분야의 대가(大家 ; master)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한 분야의 대가가 노래를 잘 부르는 대중가수일 수 도 있고 운동선수일 수 도 있고 학문적으로 업적을 이룬 철학자, 과학자 또는 화가 일 수 도 있다. 사람마다 대가를 평가하고 추종하기준이 모두 다르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또는, 좋아하는 방식대로 팬덤을 만들고 몰입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자연과학의 뒷그림자를 따라다닌 지 10년 세월이 넘었는데, 자연과학을 기웃거리게 된 사연 중에는 박문호 박사님과 조장희 박사님이 계신다. 2012년 정말 우연히, 광합성으로 물을 분해하여 지구 대기에 산소를 처음으로 올려 보냈던 시아노박테리아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는 서호주 해믈린 풀(hamelin pool)을 검색하다 알게 된 사람이 박문호 박사님이고 박문호 박사님을 따라 자연과학을 공부하다 보니 만나게 된 분이 조장희 박사님이시다.


다들 아시겠지만 조장희 박사님은 우리가 병원에 가면 찍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기(PET)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신 분으로 방사선물리학과 뇌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시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박문호 박사님이 주도하는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이라는 단체에서 매년 뇌과학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조장희 박사님께서 항상 오셔서 첫 기조강연을 맡아주셨고 매년 연구성과 진척사항을 이 심포지엄에 오셔서 처음으로 공개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심포지엄 내내 주옥같은 최신의 뇌과학 연구 성과들이 보이는데도 "저게 뭐지?" 정도의 감흥밖에 없었음에 부끄러울 뿐이다.


이 두 석학의 지적 유희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2016년 10월 몽골 초원으로 답사여행을 같이 같던 때의 사례가 있다. 나는 당사 답사 때 같이 동행하지 못했다. 동영상을 보고 감탄만 했을 뿐이지만 이 영상의 잔상은 머릿속에 남아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유튜브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eQPA72kTGtI  )


동영상 내용을 잠깐 소개하면 몽골 초원에서 야영을 하는 답사 과정 중 아침 출발 전에 버스 앞에서 작은 화이트보드를 들고 두 석학이 프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 방정식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을 설명을 한다. 끝없이 펼쳐진 몽골 초원의 초록의 향연에 인류의 위대한 대가들이 들여다본 자연과학의 방정식을 주고받으며 풀어낸다. 이보다 더 경이로운 장면이 있을까? 두 석학이 유리알 유희처럼 굴리는 자연과학의 공식이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과학 분야의 이런 대가나 석학들의 뒤를 기웃거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재야에는 정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해 있는 분야별 대가들이 정말 많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살롱콘서트에 초대를 받아 갔다. 정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규모로 연주자를 초빙해 음악을 감상하는 자리다. 대형 홀에서 하는 음악회는 여러 번 갔어도 이렇게 20명만 초대하는 작은 살롱콘서트는 처음이라 초대를 받았을 때 쭈볏쭈볏했다.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초빙해 음악을 들을 정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졸고 있을 모습이 염려되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살롱콘서트에 오신 분들의 내공은 장난이 아니었다. 피아노와 첼로 연주자의 협연과 독주로 펼쳐진 시간 사이사이로 연주자께서 곡이 만들어진 배경과 작곡가에 대한 행적을 같이 들려주신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관객으로 오신 분 중에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미술평론가도 계셨는데 음악가와 대비되는 피카소와 클림트의 열정을 같이 엮어서 부연설명을 곁들여 주신다. 음악과 미술 세계를 통섭하는 시간이 된 살롱콘서트였다.


우리 곁에는 정말 한 분야의 대가들이 곳곳에 숨어 계신다. 내가 모르고 내가 접하지 않았기에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무얼 모르는지, 어떤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이것이 내가 산다고 하는 동안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어떤 지향점을 향해가는 지표가 될 것인지 펼쳐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모르는 분야,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들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점점 아는 것만 찾고 아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빨리 깨부수고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만남과 경험을 통해 내 존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활력을 얻어야 한다. 삶의 자극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 대가들의 뒤에 서 있으면 떡고물처럼 떨어지는 자연의 우연한 확률도 엿볼 수 있고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낸 무한대의 생소함도 만날 수 있다. 그 새로움을 만나는 일에 가슴 떨리고 오금이 저려야 그때서야 그들을 만날 수 있다. 내 주변에 그런 대가들이 계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행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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