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날에 섰습니다. 5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6월의 초입에 선 경계입니다. 어제 다르지 않고 내일 틀리지 않은 현재를 사는 인간이 부여해 놓은 숫자의 마법입니다. 지구와 태양의 움직임에 선을 그어놓고 숫자를 입히고 그 의미의 쇠창살 안에 스스로 갇혔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고 세월을 한탄합니다. 곧 들이닥칠 죽음의 운명에 덜덜 떱니다. 안간힘을 쓰고 운동을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우매할 수가 있을까요? 유한한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업보일까요? 그 업보조차 눈치채고 다시 지금 여기 이 순간으로 돌아온 걸까요?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 걸까요? 원초로 돌아가 다시 물어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이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질문은 같지만 다가가는 길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정답이 아닌 해답을 구하는 겁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질문하는 법을 모르고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면 아무 생각이 없게 됩니다.
"이게 뭐지?"를 묻는 사람과 무심코 지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게 뭐지?"를 묻는 순간만이, 자연에 다가갈 수 있고 들여다볼 수 있 수 있습니다. 묻지 않으면 자연과 외부세계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있는 것이고 그저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묻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일부러 기억을 하기 위해 가동하는 단초의 시작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요 봐도 본 것이 아닙니다. 기억을 붙잡아둘 옷걸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기억은 억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호모사피엔스의 기억은 효율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1,400cc 크기 안에 세상의 온갖 풍광을 집어넣고 자기화해야 하는데 한계가 있음으로 인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들은 지워버리고 새롭고 놀라운 장면을 집어넣기 위해 공간을 비워둡니다. 기억이 사라지는 이유입니다.
기억을 억지로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물어야 하고, 묻기 위해서는 기억의 옷걸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질문이 바로 기억을 거는 옷걸이입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봅니다. 건물 사이사이로 서울의 남산 한 자락만이 힐끗 보입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이 서 있는 서울의 땅에 대해 생각해 볼 틈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서울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인왕산, 북악산, 도봉산, 북한산, 불암산, 관악산의 형상이 언제 만들어졌고 왜 화강암의 바위산인지 물어볼 공간이 없습니다. 이 산들이 중생대 쥐라기 1억 7천만 년 전에 심성암인 화강암이 대보조산운동으로 관입되어 올라와 형성되었다는 사실조차 감춰져 있습니다. 아니 하루종일 흙을 밟을 일이 없으니 물을 수 조차 없습니다.
환경이 기억을 만듭니다. 땅을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언젠가 돌아갈 곳에 대한 기억의 옷걸이를 만드는 일입니다. 숨 쉬는 대기로 훨훨 날아가 다시 원자로 환원되어 또 다른 생명, 또 다른 바위로 스며들 자신을 보는 일입니다.
부동산업자의 시각으로 땅과 바위와 산을 보면 돈으로 보입니다. 내가 돌아갈 원천으로 토양을 들여다보면 지구역사 생명의 공진화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질문을 어디에다 던질 것인지는 자명해집니다. 어디에 중요한 방점을 찍고 들여다봐야 하는지 말입니다. 땅과 바위와 산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세계까지도 힐끗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낸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인간 생명의 100년을 넘어 지구역사 46년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어떻게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의 차이입니다. 모르면 편할 수 도 있지만 그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2차원의 수준에서는 3차원의 공간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4차원에서 3차원의 세계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습니다. 질문이 스스로 발현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수동적 학습밖에 할 수 없어 피부와 와닿지 않습니다. 공부를 못하고 안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 물을 수 있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해소를 위해 따라가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 이것을 '산다'라고 합니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원초적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저 산은 왜 있는지, 저 강은 왜 흘러 가는지 물어보고 그래서 저 산과 저 강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또한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존재는 나에게 얼마나 귀중한지를 화들짝 깨닫게 되는 물음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산과 강과 바람과 그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합니다.
ps : 예전에도 많이 물어왔군요. 질문은 끝이 없는 여정인듯 합니다.
ㅇ 물어라. 묻지 않으면 답변을 얻을 수 없다 (2023.6.7 https://brunch.co.kr/@jollylee/703 )
ㅇ 당연해서 묻지 않았던 일상을 물어라 (2024.1.17 https://brunch.co.kr/@jollylee/8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