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하고 기억을 잘하는 방법은 키워드를 잡는 데 있다.
키워드(key word)는 "어떤 문장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말"이다. 장황하게 긴 문장을 연결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사변을 늘어놓는 것이다. 알면 명확하다. 딱 한 단어, 딱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을 '안다'라고 한다.
애매모호, 두리뭉실은 아는 게 아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그래서 수학은 명쾌하다. 답이 나오면 아는 것이고 답이 틀리면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양(量 ; quantity)은 숫자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나둘셋넷 헤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모든 것은 수다(All is Number)'라는 정의는 그래서 타당성의 진리다. 현대과학의 총아인 양자역학도 빛의 알갱이가 있을 확률을 헤아리는 것이고 엔트로피도 상태의 수를 세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고 존재고 현상이다.
키워드에 올인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브레인의 기억 저장고 저장방법과 인출방법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하는 기본 단위가 단어다. 브레인의 신피질에는 단어 렉시콘의 틀 속에 비슷한 속성의 단어들이 주변에 함께 저장되어 기억의 트리거 역할을 한다. 한 생각 떠올리면 관련되는 상황들이 줄줄이 연상되는 이유다.
이 키워드 연상법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연습해 왔다. 조선 500년을 군림했던 왕 27명의 계보를 어떻게 외웠는가?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이렇게 외웠다. 그것도 3/4 리듬을 타면서 말이다.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어디 이뿐이랴. 이과생들의 기본인 주기율표 원소이름도 앞에 있는 스무 개만 외무면 된다고 하여 "수헬리베붕탄질산푸네 나만 알지펩시콜라크카 ~~"로 달달 외웠고 지리학 고생대 연대순서도 "컴하고오실 데에는 석탄 퍼먹고 오세요(캄브리아기-오르비도스기-실루아기-데본기-석탄기-페름기)"라고 외웠다.
이 키워드 연상법 때문에 역사에서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조선 왕들의 연대기는 아직도 기억의 단초를 잡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첫 글자를 떠올려 전체 맥락을 연결하는, 아주 단순하고 초보적인 방법이 기억의 트리거로 유효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에도 그 세계를 담고 있는 키워드가 반드시 있다. 이 키워드를 잘 잡아야 전체 지식의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이 키워드는 깊은 우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다음을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리를 매듭으로 끝내버리는 우를 범했다. 딱 거기까지만 하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망설이거나 들어가지 않았다. 시험에 안 나오고 사는데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중생대가 2억 5천만 년 전 시작되어 트라이아이스 기와 쥐라기와 백악기를 거쳐 6,700만 년 전 신생대로 넘어온다는 것을 알아봐야 사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저 나는 '알고 있어' 정도의 자족감일 뿐이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왜 알아야 하는데?를 물어야 한다. 알면 2억 5천 년의 시간을 살 수 있지만 모르면 100년밖에 못 보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이렇게 '산다'는 시간의 길이를 상대적으로 달리 할 수 있다는 차이다. 그것도 본인이 시간의 길이와 깊이를 알아챘을 때에만 작동한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명확하다. 기억해 내는 일이다. 기억해 내는 일은 단초를 떠올리는 일이고 단초들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래서 맥락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시간의 맥락을 연결하여 1억 년 전 백악기룰 소환하는 일은 호모 사피엔스의 형질을 만든 공룡을 만나는 일이다. 그 공룡이 거닐던 한반도 남해안 일대의 호수가를 거니는 일이다. 알아야 만날 수 있고 알아야 울 수 있고 알아야 가슴 떨릴 수 있다. 키워드 하나 간직하고 있는 일은 그만큼 엄중한 일이다. 태양의 눈부심을 알고 바람의 시원함과 나무그늘의 고마움을 아는 것은 세상을 알고 존재를 알고 나를 아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