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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2. 2024

메모, 기억의 단초

거의 매일 일기 쓰듯 아침 단상을 글로 정리하고 업로드한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매일 어떻게 A4용지 2장이 넘는 분량의 글을 쓰느냐? 글의 소재는 어떻게 잡아내며, 글 쓰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이다.


사실 뭐 대단한 영업비밀은 없다. 그냥 쓰다 보니 써지는 거다. 자화자찬의 자뻑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글쓰기도 습관일 뿐이다.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일상의 루틴이 되었을 뿐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올리기 시작한 Daum 브런치스토리에 쓴 글의 숫자만 해도 911개다. 올해 말까지 지속적으로 써서 올리면 1,000개가 될 듯하다. 적지 않은 분량이 됨을 안다. 그러나 하다 보니 쌓인 숫자일 뿐이다. 글은 양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질이 중요하다. 그 많은 글에 질을 들이대면 할 말이 없어지고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에세이가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소신이다. 무한대의 확률로 조합되는 삶의 패턴 중의 하나를 잡아채어 글로 증거를 남기고 흔적을 새기는 것이긴 하지만 반드시 글에 스토리와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비가 오는 자연현상을 나열하는 것은 초등학생 그림일기에 등장하는 수준의 사실묘사일 뿐이다. 멋있는데 맛있는데 굉장한데 예쁜데 정도의 형용사를 붙이는 것 역시, 단초적인 표현을 나열하는 수준일 뿐이다. 글의 쓰레기라 할 수 있다. 일상을 표현하고 쓰지만 그런 일상의 서술은 읽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줄지 모르지만 예외적 시각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새로움이 없으면 도파민이 작동하지 않고 관심도 못 갖게 된다. 일상에서 다름을 잡아채고 의미를 부여하고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글 쓴다고 한다.


그래서 글은 흘러가는 강물에 낚싯대 던져놓고 물고기를 잡아채는 바늘이다. 어떤 것이 걸려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루종일 낚싯대가 조용할 수 도 있으며 어느 날 아침, 무당 방울처럼 신들린 듯 울릴 때도 있다.

글이라는 바늘에 미끼를 잘 걸어야 한다. 미끼는 단초다. 실마리이자 키워드다. 바로 브레인이 기억을 끄집어내고 조합하고 작동하는 원리를 적용하는 일이다. 브레인은 신피질에 단어 렉시콘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키워드 중심으로 저장하고 범주화해 놓는다는 것이다. 이 단초를 얼마나 빨리 잡아채 끌고 올 수 있느냐가 글의 시작을 쉽게 할 수 있는 동력이다.


글의 미끼가 바로 메모다. 가끔 무심코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나 거실에서 혼자 떠들고 있는 TV에서 뇌리에 팍팍 꽂히는 대사들이 들려올 때가 있다. 들을 당시에는 "와! 그래" "정말 좋은 말이네" "나는 왜 저 생각을 못했지"라고 하다가도 딱 그때뿐이다. 고개 돌리면 까먹고 하루 지나면 언제 들었냐는 듯이 기억의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이때 유용한 것이 메모다. 수첩이 되었든 휴대폰 속 메모노트가 되었든 듣고 보는 순간 그 단어나 문장을 적어놓는 것이다. 아예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놓을 수 도 있다.


바로 메모상자,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메모법이다. 메모를 뜻하는 zettel과 상자를 뜻하는 kasten의 독일어 합성어로, 독일의 사회학자인 니클라스 루만이 주창한 메모법이다. 학문적인 메모법은 차치하고 그냥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방금 들었던 좋은 문구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적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메모는 기억을 떠올리는 단초가 되기도 하지만 키워드 중심으로 되어 있어 분류가 쉽고 범주화하기가 좋고 편집도 가능하다. 즉 모듈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적어놨는데 어디에 있더라?"라고 망설이면 쓸모없는 메모다. 바로바로 찾을 수 있어야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작업에 끌어와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 메모의 유용성이다. 지식의 네트워크를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은 생성형 AI인 ChatGPT의 학습법하고도 맞물려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록하는 행위다. 기록은 문맥이 맞아야 하고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흩어져있는 정보를 긁어모아 글의 앞뒤를 맞추고 이어가는 능력을 발휘하여 정보가 지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때서야 글을 읽는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고 마우스 클릭을 멈출 수 있다.


글의 엄중함이다. 써놓은 글은 바위에 새긴 암각화와 같다. 말처럼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다. 증거가 되어 목을 조를 수 도 있다. 말보다 글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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