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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4. 2024

'알아서 긴다'는 무서움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검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


진짜 무섭다. 권력 아래 똘마니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말이다.


그분이 보는 바와 같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알아서 긴다.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온갖 단체와 조직들이 일사불란하게 비위를 맞춘다. 특히 법을 다루는 기관들이 더욱 가관이다. 정권이 바뀌어 권력 쉬프트가 일어나도 그때그때 변신을 하여 맞춰나간다. 살아남는 법이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에 맞춰져 있다. 물론 모든 똘마니들이 알아서 기고, 알아서 아부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하고 불합리하여 알아서 기고 싶지 않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가만히 은둔해 있거나 정권이 바뀔 때까지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챗바퀴 돌듯 권력쉬프트가 일어나지만 권력의 힘은 변하지 않기에, 가진 자의 위력은 계속 발휘되고 가진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되고 온갖 꼼수가 난무하게 된다.


권력 불변의 원칙 밑에 모든 조직이 맞춰지고 사상과 도덕과 원칙까지도 맞춰진다. 권력은 국민국가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규제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다.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규제되고 제한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루소는 1762년 '사회계약론'에서 "잘못된 정부에서는 평등이 피상적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한 자는 계속 빈곤 속에서 살고 부자는 계속 수탈하도록 하는데 쓰일 뿐이다. 사실 법은 언제나 가진 자에게 유익하고 못 가진 자들에게 해롭다"라고 지적하고 "불평등이 강화되고 법 집행의 편파성이 계속 유지되는 것들을 줄이는 것이 법이다. 법이 이 역할을 안 하면 나쁜 경향이 계속 강화된다"라고 피력했다. 262년이 지난 지금도 루소가 간파한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세월이 흘렀으면 법과 원칙이 더 정교해지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월등히 지적 수준이 향상되어 더 훌륭한 법 적용을 통한 바람직한 시민사회가 되어가야 할 텐데, 거의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법에 적용시켜 재해석을 해봐야 할 듯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비(法匪 ;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의 행태를 지켜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알아서 기는 전형적인 주구(走狗)의 모습이다. 해박한 법 조항의 문구들을 교묘히 엮고 조합하는 법 기술들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아니 법 기술도 아니다. 법 장난이고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하는 짓거리들이 그렇다. 역시 그분께서 이미 알아채신 '권력의 맛 때문에 알아서 기는 현상'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와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의 합작임을 드러내고 있다.


아니 아니 인간은 권력을 갖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이고 못 가진 자들의 르상티망으로 힐난하는 갈등의 골짜기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법은 법이어야 하고 원칙이어야 하는 게 맞다. 위법과 반칙이 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위법과 편법이 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법 문구를 조합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법 기술자들은 고문 기술자보다 더 악랄한 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법전을 든 강도, 칼을 든 강도, 연필을 든 강도의 사회적 해악에 우선순위를 매기라면 우열을 따지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사회적 합의와 평등을 뒤흔드는 법 기술자들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는 하다 하다 안되면 '법대로 하자'라고 한다. 법을 최종 잣대이자 천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법관들이 내리는 판단은 옳고 가장 합리적일 것으로 봐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갖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사에게 밀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은 맞을 것이다라는 가정을 세우고 틀릴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야 한 사건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기술자들이 등장하여 이런 국민들의 눈높이에 흠집을 내고 아리송한 법 해석을 내놓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교묘한 법의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 알아서 기는 법의 사다리구조에 편승하여 망나니를 자처하고 있다. 이 사회적 기준과 원칙을 허무는 어떠한 행위도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농락하는 행위는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제어하고 막을 수 있다. 시민이 깨어있어야 나라가 바로 갈 수 있다. 알아서 기는 연필 든 강도와 법전 든 강도가 펼치는 연합전선이 마치 세상을 독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착각이다. 시민들은 이미 깨어있기 때문이다. 법 기술의 해석이 교묘할 뿐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편법을 썼지만 위법하지 않았다는 항변은 말장난일 뿐이다. 세상은 이미 행간을 읽어버렸다. 알아서 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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