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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5. 2024

자연의 아름다움은 문명의 울타리 속에서만 볼 수 있다

6월의 마지막 주에 들어서고 날도 덥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한줄기 밝은 빛은 여름휴가 일정을 잡는 일이다.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엔도르핀을 돌게 한다. 누구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그나마 일말의 희망일 수 있다. 조건이 어떻든 일단 휴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는 기쁘고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앞두고 밤잠 설치며 잠 못 든 밤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저 나무 도시락에 든 김밥과 사이다 한 병이 다였지만 그것조차 소풍이나 운동회 때나 되어야 먹어 볼 수 있는 귀한 시절의 추억이 있다.


나무 도시락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 있는가? 대패질하듯 나무를 얇게 뜬 펄프에, 모서리는 종이로 발라 사각 도시락을 만든 것이다. 김밥이나 밥을 담으면 나무 향이 베어 나무를 먹는 건지, 김밥을 먹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내 기억에 이 나무 도시락은 초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인 듯싶다. 1970년대라는 소리다. 지금이야 1회용 도시락은 대부분 폴리프로필렌 용기로 대체되어 있다. 


친환경을 들이댄다면 나무 도시락이 우수하지만, 음식을 담는 도시락으로써의 기능을 생각하면 플라스틱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 편리성 때문에 지구의 환경에 영향을 준 시대를 구분하는 지질시대의 이름으로 인류세(anthropocene)를 넣자고 할 때 인류세 지층의 화석으로 플라스틱 층이 단연 인류세를 대표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가장 황폐화시키고 스스로 그 황폐함에 목 졸려 죽어가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고 있다. 


지구 자연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특이점(singularity)을 넘어서는 날이 오면 인간의 힘과 기술로는 어찌할 수 없게 된다. 6번째 지구 생명의 멸절을 우리 시대에 경험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우리는 그 전조 증상들을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시원하면 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심사다. 

휴가철을 앞두고 다시 자연을 들여다보자. 자연은 아름다운가? 물론 남태평양 바다의 휴양지 섬들은 아름답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자연적이라고 해서 아름답고 유익하고 훌륭한가?'라고 말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개념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자연(自然 ; nature)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형상'을 말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지만 자연을 말할 때 인간은 배제시켜야 한다. 자연의 반대말이 인간인 형국이다.


하지만 자연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인간이 구축해 놓은 문명의 보호막 속에서만 유용하다. 문명의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자연에는 가차 없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에게 자연은 오히려 불합리하고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것이 본질이다.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인피니트 풀이 있는 리조트와 요트와 바닷가재와 해산물이 있는 요리가 있어야 하고 생존 조건으로는 생수병에 담긴 마실 물이 있어야 한다. 이런 문명의 조건들이 안 맞으면 자연은 그저 살아내야 하는 생존본능의 각축장일 따름이다. 푸른 바다는 더 이상 푸르게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건너야 할 바다일 뿐이고 먹고살아야 하기에 물고기를 잡으러 들어가 상어와 경쟁해야 하는 숙명의 바다일 뿐이다.


누가 바다를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자연을 이롭다고 했는가?


자연은 인간에게 아름답지도, 이롭지도 않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인 것이 본질이고 그 본질에 아름답다는 허울을 씌워 아름답게 느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자연은 오히려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 본연의 모습이고 그 해로움을 이겨내고자 애쓰는 모습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문명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내던져져 봐야 그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자연 속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다는 자만심은 버려라. 홀딱 벗고 자연에서 혼자 살아남을 사람, 아니 한 달 버틸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얼어 죽고 더워 죽고 굻어 죽고 해충에 물려 죽고 늑대, 호랑이 등 육식동물에 잡혀 죽을 것이다. 인류 문명은 자연에 쳐놓은 인간의 생존 울타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아름답다 포장하는 이유는 그래야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인류 문명이 만든 긍정의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자연을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유용한 단어 중 하나다. 아름답다 생각하면 아름답게 보이는 최면이자 마술이다. 언어는 그런 것이다. 예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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