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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1. 2024

대통령의 기억이 나라의 운명이다

지난주 미국 대선 후보들의 첫 TV 토론이 있고 나서 전 세계가 난리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도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TV토론 후 미국 C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72%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해서는 안된다고 응답했다.


TV 토론 다음날, 뉴욕타임스에서는 사설을 통해 "조국을 위해 바아든 대통령은 경쟁에서 물러나야 한다"라고 대놓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렇다고 전보성향인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후보자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거짓말로 정의된 후보"라고 트럼프를 규정하고 "바이든은 자신의 경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11월에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유능한 누군가를 선택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트럼프의 악의적 왜곡으로부터 국가의 영혼을 보호할 기회"라며 "이것이 바이든이 오랫동안 고결하게 봉사해 온 국가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의 이러한 힐난은, 바이든이 재임 중 이 매체와 한 번도 인터뷰를 안 해주었기 때문인 것도 작용했을 수 있지만, 바이든의 후보 사퇴 압력은 뉴욕타임스를 비롯 워싱턴포스트, CNN 등 많은 매체들이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


TV토론에서 바이든은 무엇을 보여주었기에 이런 최악의 사태를 좌초했을까?


바로 쉰 목소리로 말을 더듬고 맥락에서 벗어난 말을 해서 바이든의 나이와 건강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으로 올해 82세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령임에도 한번 더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이야 누구나 먹는 것이니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나이가 들어도 기억력이 생생해서 거침없이 토론하고 토론의 맥락을 유지해 나갔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노화로 인한 신체적 건강 악화와 정신적 기억 감쇄 문제다. 아직까지 호모사피엔스 중 이것을 뛰어넘은 사람 아무도 없다. 바이든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번 TV토론장에서 노쇄한 모습을 전 세계에 생중계로 보여준 꼴이다.


바이든 캠프에서도 이런 문제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토론 날짜도 이전의 선거 토론보다 빠른 날짜를 고집해 잡았다. 전술이 잔머리가 된 전형이다. 몇 개월 토론을 빨리 했다고, 바이든의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가리거나 보완해주지 못했다.


육체적 젊음은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지만 정신적 젊음은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깜박깜박하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 나간 것처럼 멍해지기도 한다. 바이든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신적 젊음은 '기억력'에 있다. 말을 잘한다는 것, 문맥에 맞게 조리 있게 말을 이어한다는 것의 바탕은 바로 기억이다. 안다고 해도 떠올리지 못하면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다. 대변인이 써주고 대본에 적혀있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관객과 청중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번 미국 대선 후보자들의 TV토론에는 대본 없이 대변인 없이 말 그대로 몸뚱이만 나가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격투기 옥타곤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몸이 아닌 말로 싸워야 한다는 점만 다르다.


말로 싸울 때의 무기는 '기억'밖에 없다. 조리 있게 말하고 논리로 반격하고 음성의 강약을 조절하고 제스처를 잘 쓰고 하는 것은 부수적인 기법일 뿐이다. 가장 큰 무기는 말을 잘할 수 있게 기억을 꺼내는 데 있다. 꺼낼 기억이 없거나 기억을 꺼내는데 방법을 모르거나 기억을 꺼낼 수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보여줬다. 기억하지 못하면 어찌 되는지를. 기억을 하긴 하는데 맥락에 맞게 불러오지 못하면 어찌 되는지를.


꺼낼 기억이 없는 대표를 그 자리에 앉혀놓은 나라도 있는데 미국 대통령 후보의 기억력을 이러니 저러니 구설수에 올리는 것 자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대통령의 기억력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대표를 뽑을 때는 정말 잘 선택해야 한다. 한번 잘못 뽑으면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다. 남의 나라 이야기에 재미있어할 처지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기억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 기억을 총명하고 생생하게 유지해야 한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하고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기억이 역사를 만들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기억을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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