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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4. 2024

모기와의 혈전을 끝내다

조폭의 세계에도 낭만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길거리 깡패, 양아치 세계에 낭만을 들이대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치자. 남자 세계에서의 의리와 힘을 들이대며 어떻게든 미화시켜 보려는 술수일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조폭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그 계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고 아직도 '범죄도시'같은, 관객이 1천만 명을 넘는 영화 시나리오의 나쁜 놈 배경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소위 조폭의 낭만시대는 오로지 주먹과 싸움기술로만 맞짱 뜨는 시대를 말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을 누비던 김두한, 이정재, 임화수 등이 활개 치던 시절을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시대에도 잔챙이 똘마니들은 손도끼, 쇠사슬 뭐 이런 무기들을 사용했을 테지만 조폭 우두머리들에게 스토리를 입혀 픽션의 소재로 삼기 위해서 맨주먹으로 조폭세계를 평정했다고 했을 것이다.


이 조폭의 낭만시대를 깨트린 장본인이, 싸움에 사시미 칼을 쓰기 시작한 김태촌이었다는 설이 있다. 체격이 왜소했던 김태촌이 사시미 칼을 써서 조폭세계를 평정하며 한국의 3대 조폭 패밀리로 올라섰다는 설이다.


그럴듯하다. 아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극적인 스토리를 입히면 조폭도 낭만적으로 보게 된다. 바로 폭력에 대한 인간 본성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 글레디에이터들이 그렇고 현대 사회의 종합격투기대회(UFC)가 그렇다. 구경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인간본성 중에 잔인함도 숨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전쟁은 물론 공개적으로 싸움질을 시키고 이를 지켜보며 희열을 느끼는 동물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인간의 폭력성을 이미 간파하고, 특히 폭력적인 수컷들을 제거하는 쪽으로 사회를 발전시켰다. 사형제도가 그렇다. 가장 폭력적인 존재를 사회에서 없애는 제도다. 현대사회 들어 사형을 인권의 시각으로 보게 되어 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완전 격리시키는 종신형으로 대체하고 있다.

나도 오늘 새벽 피의 전쟁을 끝냈다. 나흘간 밤마다 지속하던 모기 한 마리와의 싸움끝낸 것이다.


사흘간 일방적으로 물리며 당하고만 있었다. 치사하지만 이틀을 작정하고 모기퇴치제와 전기모기채로 무장하고 혈전을 불사했지만 신출귀몰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녀석에게 일방적으로 피를 빨리는 졸전을 거듭해 왔다. 분하고 화가 나서 잠재되어 있던 본성인 폭력성을 드러내 보이고자, 지난밤에는 작정하고 다시 전투준비를 했다. 대신 화학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전기로 태워 죽일 모기채는 준비했다.


어제저녁은 모임이 있어 집에 11시 반이 넘어 도착했다. 집에 오는 길에, 오늘밤 어떤 전술로 모기와 마주할 것인지 작전을 짰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전기모기채를,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머리맡에 두었다. 여차하면 집어서 휘두를 참이었다. 불을 끄고 일전불사의 심사로 누웠다.


그런데 이런 ㅠㅠ 금방 잠이 들어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이 떠졌다. 밤새 모기의 폭격에 시달리지는 않은 것 같다. 팔다리에 폭격의 흔적이 전혀 없다. "이 녀석이 어디로 간 거지? 그동안 피를 많이 빨았으니 불쌍해서 지난밤은 봐줬나?" 그렇게 허무한 심정으로 출근준비를 하며 샤워를 했다.


샴푸를 하고 거품타월에 바디크린징 비누를 펌핑하는 순간 샤워실 거울 한쪽을 날아가는 모기 한 마리가 보인다. 눈이 번쩍 뜨이며 폭력성이 발작처럼 용솟음쳤다. 샤워꼭지를 잠그고 모기의 비행 행적을 추적한다. 날고 있는 녀석을 양 손바닥으로 손뼉 치듯 마주쳐 즉사시켰다. 음하하~~~ 양 손바닥에 사흘간 빨았던 나의 피가 벌겋게 흘렀다. 드디어 나흘간의 추격전과 게릴라전이 이렇게 끝났다.


막상 모기를 잡고 보니 허무하다. 샤워실에 벌거벗고 서서 두 손에 피를 묻힌 자세가 승리의 모습이라니 --- 전기 찜질로 피타는 냄새가 방안에 진동해야 사흘간 밤잠을 설친 마음을 달래고 속 시원할 텐데 ---


모기 녀석이 밤새 화장실에 숨어 있었나 보다. 사흘간 충분히 흡혈을 해서 지난밤에는 굳이 식사를 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나 보다. 생존본능에 충실했던 모기에게 다소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잠재되어 있었던 폭력성을 깨워, 경각심을 심어준 모기다. 영면하기를.


오늘밤부터는 아주 편안한 밤이 되려나? 아니면 또 다른 녀석이 복수하러 오려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잡아서 불안이 사라진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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