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가장 많이 살상하는 동물은 뭘까? 풀밭을 기어 다니는 뱀? 숲 속에 숨어 기습공격을 하는 호랑이, 사자, 늑대? 강이나 늪, 연못가에 숨어 있는 악어? 바다의 상어, 해파리? 아니면 전쟁으로 동족을 살상하는 인간?
이들보다 월등히 인간을 죽이는 동물이 있다. 바로 모기(蚊 ;Mosquito)다. 모기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 5천만 명의 말라리아 환자를 발생시키고 이중 72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살인병기다. 모기 다음으로 인간을 많이 죽이는 동물은 인간이다. 내전이나 국지전과 같은 전쟁을 통해 1년에 45만 명 정도가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뱀이 연간 5만 명 정도, 의외로 개에게도 연간 2만 5천 명 정도가 물려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위키, 모기 편 자료 참조)
나는 이 세계 최강 살인병기인 모기 한 마리와 3일 밤째 혈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밤도 못 끝냈다. 오늘 밤도 안방의 문을 닫아걸고 대혈투를 벌일 각오를 다지고 있다.
스토리는 이렇다. 집에서 나는 '모기 잡는 귀신'이었다. 여름만 되면 어디서 출몰하는지 모기들이 등장한다. 집 베란다에 꽃 화분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기 유충들이 자랄 물웅덩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하루에 한두 마리가 출현한다. 거실과 방마다 전자액상모기향이 꽂혀있고 스프레이 퇴치제도 비치되어 있으며 모기 잡는 전기모기체도 두 개나 비치되어 있다. 언제든지 모기를 박살 낼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정신무장도 완벽히 되어 있다.
나름 모기의 습성과 불을 켜었을 때와 껐을 때 어디로 숨을 것인지 예측하고 따라가는 데에도 익숙해져서 웬만해서는 모기가 나의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걸려들어 전기찜질을 당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모기들이 영악해졌는지 눈에 띄지를 않는다. 윙~하고 귓전을 스치는 소리는 들리는데 불을 켜면 사라진다. 이미 귀에 모기소리를 들었다면 허벅지와 종아리, 팔 상완근 한 두 군데는 이미 빨갛게 상흔이 남겨진 다음이다. 320ml 정도 헌혈도 하는데 모기에게 빨려봐야 모기눈곱정도일 텐데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양이 문제가 아니라 빨리고 난 다음의 가려움이 문제다. 솔직히 가렵지 않다면 헌혈하듯 팔을 내줄 용의가 있다.
모기 한 마리와 3일째 전쟁 중인데 요놈의 은폐 실력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모기 중에서는 최강이다. 3일째 대치중이니 말이다. 물론 다른 녀석일 수 도 있다.
보통 11시 반 정도 잠자리에 누워 12시경 잠이 든다. 모기로부터의 침공을 막고자 선풍기를 머리맡 한쪽에 놓고 회전을 시키고 타이머를 1시간 정도로 맞춰놓는다. 선풍기 바람을 이길 모기는 없기 때문이다. 역시 선풍기가 작동되는 시간에는 모기가 못 달려들다가 선풍기 작동이 멈춘 때부터 모기의 공격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깊이 잠이 들어 모기의 침공을 피부가 감지해내지 못해 무방비로 피를 빨린다. 모기란 놈이 얼마나 영악한가 하면 꼭 다리 쪽부터 공격해 팔, 그리고 목과 얼굴 쪽으로 사정범위를 확대시킨다. 윙~~ 하는 모기소리를 듣고 선잠이 깰 때쯤이면 여기저기 공격당해 가려움이 극치에 달한 다음이다. 그렇게 3일 전부터 새벽 2시 반에도 깨고 3시 반, 4시 반에도 잠이 깼다.
지난밤은 새벽 4시 반, 모기 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3일 밤을 시달리고 있는터라, 지난밤은 아예 작정하고 방안의 불을 켜고 전기모기채를 손에 들었다. 이 놈을 잡아 죽이기 전에는 잠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모기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잠을 깨서 그런지 눈이 흐릿해 모기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온 방안을 이 잡듯 뒤졌지만 실패 ㅠㅠ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불 끄고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분해서.
그래서 모기를 유도하기로 했다. 전기모기채를 손에 들고 온몸을 재물로 내놓고 모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불을 밝게 켜놔서 그런지 10분이 넘도록 접근하지를 않는다. 모기도 잔머리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10분 여가 지날 즈음 귓가로 윙~~ 하는 소리가 지나간다. 반사적으로 눈길이 소리를 쫒는다. 그런데 분명히 눈에 모기의 잔상이 보였는데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놈이 공간 순간이동을 하나? 의심이 들었다. 머리맡에서 소리가 들렸으면 이 놈이 아무리 멀리 날아 도망쳤어도 반경 1-2미터 안에 어딘가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보일질 않는다. 말 그대로 신출귀몰이다. 그렇게 30분을 대치했음에도 모기 녀석은 꼭꼭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 아침은 모기 녀석 덕분에 1시간 일찍 움직이는 신세가 되었다. 잠을 일찍 깨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제길~~
오늘 퇴근해서 밤의 전투를 다시 계획 중이다. 오늘밤은 기필코 이 놈을 전기모기채에 얹어놓고 통구이를 해버리리라. 전기모기채에서 피냄새가 진동하도록, 그래서 다른 모기들이 벌벌 떨도록 해 주리라 다짐을 해본다. 모기에 물려 가려운 팔뚝을 벅벅 긁으며 말이다. 기다려라 이놈의 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