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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5. 2024

사회생활을 잘못했구먼!

꼰대들의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로부터 참 많이도 맞고 다녔다. 모든 선생님께서 그런 것은 아니다. 꼭 보면 학교마다 회초리 들고 악역을 자처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분들에게는 영락없이 불명예스럽지만 훈장 같은 별명이 따라붙어 있다. '개장수' '미친개' 등등. ('라테는 말이야'로 보편성을 부여한 상황 전개지 선생님을 폄훼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요즘 같은 학교분위기에서는 상상도 못 할 '사랑의 매', '다 너희들 잘 되게 하기 위한 가편(加鞭)이야'를 내세운 회초리다. 월말 시험을 넘어 매일매일 치르는 퀴즈 시험에서 틀리면 틀린 개수만큼 빳따나 손바닥을 맞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다. 왜? 내가 시험문제를 못 맞췄으니까 변명할 원천이 애당초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스라이팅 당한 듯하다. 꼰대들의 학창 시절은 뻔했다. 우리가 상위권 대학이라고 칭하고 있는 곳에 몇 명을 보냈느냐로 고등학교의 순위가 매겨졌고 선생님들은 그 숫자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래서 성적이 잘 나왔고 좋은 대학 갔을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게 선생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보면 대학 갈 놈은 가고 죽어라 맞는 놈도 대학 못 가고 빈둥거리며 사는 듯했지만 세월이 지나 귀밑머리 하얘지다 보니 오히려 돈 많이 번 놈은 많이 맞은 놈이더라. 그나마 덜 맞고 공부 좀 한다는 녀석들은 대부분 의대를 가거나 행시나 사시 봐서 공무원 하거나 선생님, 대기업 취업을 하여 그럭저럭 인생의 중간 시대를 살아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다들 퇴직을 하는 시간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니 공부 잘했던 녀석들은 모두 현업에서 은퇴하게 되고 지지리 공부 안 해 엉덩이 맞던 녀석들은 자영업으로 버텨내어 평생직장을 나름 유지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한 시골에 밭뙤기 몇 천 평 물려받아 얼굴 까맣게 농사짓거나 과수원 하던 녀석들은 어느 날 도로가 나고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보상을 받아 떵떵거리며 인생반전을 맞보고 있는 녀석도 있다. 동창 모임에 나와 술값을 내고 5만 원짜리 팁을 뿌리며 "학교 다닐 때 궁상맞게 빳다 맞던 예전의 내가 아니야"를 증명하고 보상받으려는 녀석들도 있다.


누가 더 성공한 삶을 살았고 누가 더 잘 살고 있는가?


질풍노도의 시절, 선생님의 가편은 개개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누구에게는 정신이 번쩍 드는 죽비였고 누구에게는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작동되었을 터다.


돌고 돌아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종착점에 오면 결국은 같아지거나 비슷해진다. 우열을 이야기하기가 민망해진다. 다들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살아내는 거다.


"내가 ㅇㅇ에서 ㅇㅇ 할 때는 말이야" "내가 국회의원 000랑 친한데 말이야"라는 소리는 그저 자기 위안이 뿐이다. 아무 쓸모가 없는 '라테'일뿐이다. 지금 할 수 있고 지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결국 남는 건 내 주위에 누가 있느냐이다. 그것도 누가 나랑 밥 먹고 술 마셔 줄 건지가 중요하다. 예전 거래처 사람들에게 전화해 봐라. '선약이 있는데 다음에 한번 보시지요' '이를 어쩌지요 회의가 소집되어 있는데' 정도면 애교 수준이다. 아예 전화를 안 받는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정리되어 간다. 서운해할 필요 없다. 그게 사회고 그게 인간 군상이다. 사탕 하나라도 자기에게 들어와야 쳐다봐주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는 존재는 만날 가치도, 통화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통화해 봐야 서로 불편할 뿐이고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끝까지 전화번호부에 남아있는 이름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한 50명에서 좀 많게는 100명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착각하지 마라. 20명 정도 남아 있으면 다행이다. 언제든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 숫자가 말이다.


그렇게 간 빼주고 쓸개 빼줄 것 같았던 주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친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부탁하면 다 들어줄 것 같은 사람들이 말이다. 착각하지 마라. 사회에서의 사람관계는 짝사랑의 관계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상대는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일회용일 수 있고 씹다가 미처 못 뱉은 껌일 수 있다.


"너무 냉정하고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고 "네가 사회생활을 잘못했구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정리하고 일을 정리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 주변의 사람으로 인하여 나의 아우라가 더욱 빛을 발하고 제2의 삶을 사는 전환에 화톳불을 돋우는 입감이 된다. 서로 발가벗고 다이다이로 서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챙겨볼 일이다. 남은 삶을 끝까지 같이 갈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누가 내 주변에 몇 명이나 남아 있을 것인지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잘 안다. 그 멤버들은 끝까지 챙겨야 한다. 이 멤버 리멤버 포에버가 됨을 명심해야 삶이 단출하지만 풍요로울 수 있다. 사는 거 별거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다. 내가 먼저 전화하고 내가 먼저 찾아가야 한다. 그 안에 웃음이 있고 편안함이 있다. 와인 한잔, 삼겹살 한 점에 함께 하고픈 얼굴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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