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Aug 06. 2024

핑계는 하수의 수단이지만 인정은 고수의 고백이다

세상의 모든 일과 모든 것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모든 일과 것은 결과일 테니 그 결과를 드러나게 하는 무언가가 원인이다. 원인이 본질이다. 핑계 댈 필요가 없다. 그냥 보여주면 된다. 핑계대기 시작하면 꼬이게 된다. 사건이 되고 감정이 되고 싸움이 된다. 핑계란 그런 것이다.


핑계(excuse)는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우거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을 말한다.


공동묘지에 영면하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도 사실 죽음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모여있을 뿐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제각각의 모든 다른 사유가 등장한다. 누구는 암으로 죽었고 누구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누구는 노환으로 죽었고 누구는 넘어져 죽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원인은 사족에 불과하다. 공동묘지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숨을 못 쉬어 죽었다. 본질은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핑계를 들이대는 이유는 뭘까?


공동묘지에서 찾을 핑계가 아니다. 그냥 우리의 일상이 핑계로 점철된 삶일 수 있다. 핑계를 대면 일단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들기 때문이다. 사실, 핑계는 본질에 대한 가림막의 역할밖에 못하기에 순간 위장일 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순간을 회피하고 싶은 게 인간 본성이다.


바로 피식자(被食者 ; prey)로 살아온 포유류의 흔적이지 싶다. 2억 년 전 육식공룡과 육식포유류로부터 도망치며 살아남아야 하는 약자의 DNA 속에 남아 있는 생존본능과 같은 것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며 약자의 힘을 모아야 하는 사회의 특성상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것이 서로를 안심시키는 구실로 작동한다.


이 핑계가 변명(辨明 ; excuse)으로 발전해 "어떤 경우나 잘못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르기 위해 설명하는 구실 혹은 이유"로 진화를 하지만 구차함에 머물러 있는 수준을 핑계라 한다.


골프로 오면 핑계의 절댓값과 만나게 되는 재미있는 유머가 있다. 핑계가 용어를 바꾸는 현상이다. 바로 드라이버 샷이 "왜 이러지"이며, 아이언 샷은 "이상하네", 퍼팅은 "에이씨"라는 핑계의 순우리말로 치환된다. 

골프가 잘되는 원인은 오로지 하나다. 자기가 잘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오만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날씨가 안 좋아서 그렇고, 아침식사를 안 해 힘이 없어서 그렇고, 티샷 하는데 옆에서 떠들어서 그렇고, 토요일인데 골프 치러 간다고 와이프가 바가지 긁어서 그렇고, 드라이버 산 지 5년도 넘어서 거리가 안 나서 그렇고 등등 핑계의 한도는 끝이 없다.


핑계의 전형은 정치판에서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전 정권 때문에 그렇다"라고, 전 정권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핑계를 넘어 힐난을 한다. 모지리의 전형이다. 과거는 핑계삼으로라고 있는 게 아니다. 과거를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그랬다면 지금은 안 그러면 되는 것이다. 너무도 간단한 이치에 핑계를 대면 옹졸해 보이고 치졸해 보이고 능력 없음을 드러내는 꼴일 뿐이다.


김건모의 노래 '핑계'속에 등장하는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떠난 연인의 핑계는 순수한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핑계는 온갖 사건에 가져다 붙이는 구실이다. 자기가 관여된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에 대한 구차한 눈가림일 뿐이다. 핑계 대지 말고 그대로 드러내 보여줘야 한다. 핑계를 댄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설사 결과가 잘 안 나왔다고 해서 핑계대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 최선을 다했다면 다시 도전할 힘과 원인이 된다. 이번엔 왜 잘 안 되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다시 하면 반드시 성공할 확률이 더 커진다. 그래서 실패를 많이 해본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꼭 성공할 수 있는 최대 확률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다. 반면에 핑계로 일관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핑계의 늪에 갇히게 된다. 원인을 핑계를 통해 밖에서 찾으니 제자리걸음이거나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핑계가 많은 사람은 피해야 한다. 핑계가 많다는 것은 일단 하기 싫은 거다. 


핑계가 많은 사람은 딱 보면 안다. 만나는 약속을 잡아봐도 '이번주는 점심 약속이 꽉 차서 안되고 두 달 뒤에는 출장 가서 안되고 한 세 달 뒤에 다시 한번 약속 잡기로 하시죠"라고 하는 핑계는 만나기 싫다는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핑계가 많다는 것은 게으른 거다. 그런 사람은 걸러야 한다. 그 핑계가 나 때문으로 넘어와 덤터기 쓸 수 도 있게 된다.


핑계 대지 않고 자신의 실수와 게으름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다. 정치판에서 이런 고수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