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아파트를 나서는데 상큼한 풀냄새가 코끝에 전해옵니다. 아파트 경비원께서 정원에 자란 풀들을 베어내고 있습니다. 오늘이 입추긴 하지만 아직 낮의 태양이 뜨겁기에 아침 일찍 낫을 드신 모양입니다. 제초기도 있지만 아침 이른 시간이라 시끄러울까 봐 낫으로 깎고 계십니다. 그 베인 풀들이 내뿜은 향이 아파트의 아침을 깨우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잔디를 깎거나 할 때 나는 독특한 냄새를 상큼하게 인식합니다. 향수의 향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잔디를 깎을 때 풀들이 내는 냄새는 위험을 감지하고 내는 비명이자 도움을 요청하는 SOS입니다. 식물은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이 없으니 화학물질을 내뿜어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식물이 공격을 받을 때 내뿜은 향기의 원천은 '녹색잎 휘발성 물질'이라고 하는 GLV(Green Leaf Volatiles))입니다. 식물의 세포막에 상처가 나면 상처 난 부위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휘발성 물질은 육식곤충들에게 성 페로몬처럼 인식됩니다. 즉 나뭇잎을 갉아먹는 초식곤충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으니 잡아먹어달라는 신호였던 겁니다. 이 GLV라는 화학물질은 식물들의 공통언어입니다. 종이 다른 식물들도 이 화학물질을 인식할 수 있어 위험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곤충들의 소화를 방해하는 물질을 만들어 내어 방어를 합니다.
또한 식물은 자신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박테리아, 곰팡이, 해충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퇴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뿜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있는데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입니다. 산림욕을 가서 피톤치드를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사실 뻥입니다. 숲 속의 환경이 소음과 먼지가 없어 상쾌한 공기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건강해지는 것처럼 착각할 뿐입니다. 화학물질의 인체독성을 따지는 것은 물질의 종류가 아니라 용량(dose)에 의해 결정되지만 피톤치드도 식물이 만드는 방어기제의 독성물질입니다.
풀냄새와 더불어 비가 오면 맡게 되는 비냄새와 흙냄새도 있습니다. 땅에는 방선균(放線菌 ; actinobacteria)이라고 불리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습니다. 방선균은 죽은 유기체를 분해해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대지의 청소부입니다. 복잡한 화합물도 이들 곰팡이를 만나면 가장 단순한 원소로 돌아가게 됩니다. 즉 생명을 유지했던 모든 것들이 이 곰팡이를 만나면 최초의 원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방선균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이 지오스민(giosmin)인데 이 물질이 우리가 맡게 되는 비냄새와 흙냄새의 분자입니다. 놀랍게도 이 지오스민의 분자식은 C12H22O입니다. 포도당인 글루코스 분자(C6H12O6)에서 각 원소의 개수만 다를 뿐입니다.
땅속의 방선균은 비가 안 올 때도 계속 이 생명의 순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이들 지오스민이 대기 중으로 확산되지 않아 냄새가 나지 않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면 땅에 떨어진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에어로졸 형태가 되는데 이때 땅에 있던 지오스민 분자들을 끌고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때 비냄새, 흙냄새를 맡게 됩니다. 이 비냄새, 흙냄새에 이름이 붙어있기도 한데요, 페트리코(petrichor)입니다.
사람은 이 지오스민 냄새를 맡으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저 자연을 이용할 뿐입니다. 아니 자연의 일부일 뿐입니다.
땅 속의 미생물들은 식물의 뿌리를 통해 태양을 만나고 미생물들은 뿌리에게 대지에서 분해한 무기물을 제공합니다. 공생입니다. 흙에서 생명이 나는 것은 미생물과 같은 작은 조절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 전체를 흔들어 움직이는 거인입니다.
미생물과 식물과 동물의 공진화는 지구표층에서 벌어지는 자연 현상입니다. 인간도 그 안에 거주하는 이주민일 따름입니다. 풀냄새, 흙냄새가 다시 코끝에 전해오면 자연 속에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경종임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