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홍보업무를 35년째 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미스터리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홍보라는 것이 항상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스토리를 입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이다 보니 '새로움' '처음' '진실'이라는 단어들과 아주 친숙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세상만사, 천상천하에 항상 처음이고 항상 새로운 것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아이디어를 얻고자, 다른 기업들은 어떤 것들을 홍보 소재로 사용하는지 벤치마킹을 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하지만 찾아내기란 진흙밭에서 진주알 찾기나 다름없다. 그나마 홍보대행사들이 대리전을 펼쳤던 이벤트들을 자화자찬하는 사례들을 접하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 국내기업들은 홍보 사례들을 꽁꽁 숨겨두고 있다. 기업비밀이다. 회사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드러난 경우를 빼고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나 실패 사례를 접하기는 더욱 희귀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잘해봐야 본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잘못한 것은 감추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테니 말이다. 이 벽을 넘어야 하는데 넘기가 만리장성이다. 아니 달까지 계단을 만들어 걸어가는 길이다. 국내에서는 말이다.
뭐 눈에는 뭐 만 보인다고, 미국의 휴스턴공항이 수하물이 늦게 나온다는 승객들의 불만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례를 들여다보자. 2012년 8월 18일 뉴욕타임스에 알렉스 스톤(Alex Stone)이 쓴 칼럼 "Why waiting is torture"에 소개된 사례다.
휴스턴공항은 유나이티드항공이 허브공항으로 쓰고 있는 미국 최대 공항중 하나다. 휴스턴공항은 수하물 찾는 대기시간이 길다는 승객 불만이 끊이지 않자, 이에 대한 해결책의 묘수를 생각해 낸다. 바로 수하물을 찾는 캐로셀(carousel)을 승객이 내리는 탑승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배정을 하여 승객들이 걸어가는 시간을 길게 하는 전략이었다. 승객들은 기존보다 6배나 더 먼 거리를 걸어 수하물을 찾으러 갔다. 캐로셀 근처에 있던 컴플레인 데스크도 기존보다 12배 더 먼 거리로 옮겼다. 그 이후로는 수하물 관련 불만이 모두 사라졌다.
인간 심리학을 이용한 기발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줄 서기 심리학(Queuing Psychology) 아다. 사람은 불확실성을 기다리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예상 대기 시간과 지연에 대한 설명으로 불확실성을 상쇄시키면 참아낼 수 있게 된다. 크리스피 도넛 가게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도넛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게 오픈 주방으로 개방하여 입맛도 다시게 하고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게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설치하여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시 살피게 함으로써, 느리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의 속도에 대한 불만을 잊게 만든 사례도 유명하다. 지금은 거울보다는 동영상 화면을 설치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는 쪽으로 전환했지만 말이다.
기다림을 참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인내심이다. 그것도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바로 이 타이밍의 시간을 점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기다리는 시간을 짧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줄 서기와 관련된 해프닝 사례도 있다. 과거 생필품을 배급받던 구소련에서는 사람들이 줄만 서있으면 무조건 뒤에 가서 섰다고 한다. 무엇을 주는지 모르면서 말이다. 일단 줄에 붙고 나서 "뭘 받을 수 있는 줄입니까?"라고 물어봤다는 슬픈 전설이다.
줄은 인간 사회현상의 축소 단면이다. 줄을 서는 것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한다.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줄에는 시간에 대한 공정함이 깔려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는 선착순의 원리다. 새치기를 한다는 것은 공정함을 위반하는 것이다. 어떤 줄이든 간에 새치기하는 인간은 그 사회에서 매장된다. 공정함에 대한 인간 본성의 욕구는 근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이든 은행이든, 카운터가 여러 개 있더라도 번호표를 뽑아서 대기 순서를 정하거나 한 줄로 세우고 빈 카운터로 차례로 들어가게 한다. 공정함에 대한 합의다. 반면 대부분 대형 마트는 여러 개의 계산 카운터 각각에 줄을 서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계산하려는 대기 손님들을 빨리빨리 빼기 위해서는 한 줄 대기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 줄 서기를 선호한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나가는 상황을 용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활용을 최대한으로 해야 하는 마트에서 할 수 있는 카운터에서의 줄 서기 운영방식은 이처럼 다른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처럼 과연 기다림은 고통일까?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좋아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일 거다. 기다림을 설렘으로 치환할 수 있는 여유와 사랑의 마음을 들이대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