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숏폼이나 릴스와 같은 짧은 동영상에 매몰되어서 그런지, 장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잘 만든 다큐 말입니다.
나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1984년에 KBS에서 방영했던 '실크로드'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상은 일본의 NHK가 중국 CCTV와 합작하여 제작했던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중국 장안에서 로마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죽의 장막에 갇혀 있던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던 때라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특히 지금도 지리적 위치 때문에 쉽게 갈 수 없는 파미르 고원이나 텐산산맥 접경지역이지만 당시에는 냉전시대의 철저한 보호막에 싸여 금단의 땅이었는데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KBS에서는 NHK에서 방영된 이 실크로드를 1984년 4월부터 매주 금요일 밤, 50분 분량으로 30편을 나눠 송출했습니다.
아직도 그 다큐멘터리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실크로드'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집에 들어가 본방 사수를 했습니다. 지금이야 다시 보기를 통해 언제든지 볼 수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본방사수만이 영상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몇 회째인지는 모르지만 살구꽃 만발한 훈자 마을의 풍경은 아직도 뇌리에 꽂혀있고 버킷리스트로 언젠가 가보아야겠다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실크로드 다큐멘터리의 OST를 뉴에이지 음악가인 기타로가 입혔습니다. 가히 몽환적입니다.
1884년, 대학교 2학년 시절입니다. 젊은 청춘이 미지의 세계에 눈이 팔리게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영상입니다. 우리나라가 해외여행자유화가 된 것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였으니 시대를 넘어선 다큐멘터리 한 편은 젊은 청춘의 이상을 여행에 핀업을 해버렸습니다. 실크로드의 잔상은 그렇게 해외를 쏘다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TV에서 나오는 해외 다큐멘터리는 찾아서 일부러 보는 편입니다. 요즘은 별로 볼 게 없는 게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EBS에서 하는 세계테마기행 같은 프로그램이나 KBS에서 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그램들은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못 가본 해외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덕에 리모컨 서핑이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난 7월에도 EBS 세계테마기행에 파키스탄 편이 4회에 걸쳐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드밀을 뛸 때 앞에 있는 화면의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시선이 멈춘 곳이 바로 세계테마기행이었습니다. 파키스탄 특집 두 번째 방영분이었는데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칼라시 계곡(kalash valleys)에 사는 소수민족인 칼라시족을 찾아간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중에 할머니부터 3대가 같이 사는 칼라시족 가정의 모습이 비칩니다. 할머니에게 방문자가 묻습니다. "언제부터 같이 사셨어요?" 할머니께서 머뭇거리십니다. "한 30년 정도 되었을까?"
치매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칼라시족은 나이와 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정확하게 세어보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나이를 세지 않는 부족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나이를 세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접근방식이 더 놀라웠습니다. 내가 몇 살인지는 사는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삶을 사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기록이자 역사이기에 그렇습니다. 자연은 나이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면 됩니다. 숫자를 부여하면 크기가 드러나고 비교가 됩니다. 분명 나이라는 숫자를 세면 장점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세는 것을 멈추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다가옵니다. 꼭 세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입니다.
세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고 자연은 옷을 갈아입습니다. 나이는 외부의 변화에 나를 맞추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세지 않는 순간, 나는 곧 자연이 됩니다. 원초적인 회귀로 퇴행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게 본질임을 알게 됩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속박을 놓는 순간, 나에게는 현재와 현실만 존재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 순간이 쌓여 남겨진 흔적이고 가야 할 길이 됩니다. 언제든 떠나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습니다. 생명의 시작과 동시에 시간이라는 강에 휩쓸려 가지만, 그 시간을 세지 않으면 시간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찬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다시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자연의 흐름을 시간이라 규정짓지 말고 그냥 따라가면 됩니다. 그때서야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너무 호들갑스럽게 살 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자연에 순응하고, 우연히 이 세상에 왔으니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흩어지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나이와 시간을 인지의 공간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돌아갈 시간도 결국 끌려오지 않습니다. 오고 가는 것이 편안한 상태, 자연의 상태이자 시간을 놓아주는 현명함이지 않을까 합니다. 삶을 사는 지혜는 힌두쿠시 첩첩산중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곳으로 배낭매고 홀로 트레킹을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