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과 대상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징'이다.
상징(象徵 ; symbol)의 대표가 문자, 그림, 기호다. 인간사는 바로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발달시켜 온 고유의 특질이기도 하다. 상징은 주술로 연결되고 종교에서 정점을 맺는다. 일상에서도 상징을 빼면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것들이 태반이다. 가까이는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에서부터, 추리소설의 대명사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서 스토리를 이어주는 기호와 문장들도 모두 종교적 상징을 모티브로 한다. 심지어 개개인 사람의 이름이며 단체명, 기업의 회사명, 제품 브랜드 이름, 로고 까지도 모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실물 대상에 존재 근거를 부여하는 작업이 언어로서 단어를 입혀 매칭시키는 일이다. 이 언어화 과정 자체가 실체에 상징을 덧입히는 작업의 일종이다. 언어로 대상을 규정해 이름 불러주지 못하면 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마당에 키우는 황구도 '도그' '해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먹이 줄 대상으로 부를 수 있고, 집 나간 고양이가 '나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부르며 찾아다닐 수 있다.
특히나 시와 문학의 세계에서 상징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직설적 언어로 표현하기보다 상징적 언어로 에둘러 갈 때가 본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상징의 미학이다.
사실 어떤 상징이, 상징으로서의 기능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직관적으로 대별되는 상징이 있기도 하지만 집단 공동체가 지나온 과거를 통해 축적된 형태로 표현된다. 이 상징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 한다.
이런 상징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동상이다. 동상 자체가 상징을 갖고 있지만 동상의 인물을 표현해 내는 수단으로 상징이 쓰이는 전형적인 사례다.
미국을 세운 국부들의 동상을 보자.
미국 국회 의사당 로툰다 홀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동상이 있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왼손은 가슴 높이의 파스케스에 올려놓고 서있는 모습이다. 지팡이야 그렇다고 치고 파스케스(fasces)는 뭔가? 조지 워싱턴 동상뿐만이 아니다. 링컨 메모리얼에 앉아있는 링컨 동상도 파스케스로 의자를 장식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미국 국회의사당 의장석 연단 뒤편을 장식하고 있는 장식물도 파스케스이고 심지어 10센트짜리 동전의 뒷면에도 파스케스 문양이 있다.
바로 파스케스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케스는 막대기를 여러 겹으로 묶어 그 끝에 도끼를 달아놓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쓰인다. 이 파스케스는 고대 로마 집정관의 경호원들이 들고 다니던 의장용 무기에서 유래되어 집정관의 권위와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하는데 미국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차용된 것이다. 파스케스는 로마제국의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 되어 미국뿐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을 동경하는 많은 나라나 단체 등에서도 이 문양을 사용하여 결속과 공동체 의식 함양을 꾀하고 있다.
상징은 이와 같이 문화에 대한 공감과 교류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파스케스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 이런 스토리를 모르면 전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모르면 그저 줄 그어놓은 장식용 디자인일 뿐이고 쓸데없이 세워놓은 과시용으로 보일 뿐이다.
상징은 의미다. 그렇다고 해야 그렇다. 그러함을 모르고 보는 것은 아무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은 함축이다. 상징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는 순간, 실체가 다가온다. 단순한 돌덩이, 나무 뭉치가 아니고 그 안에 담고 있는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의 함성이 함께 펼쳐진다.
상징의 범위를 '나'로 한정 지어보자. '나'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건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삶에서 남들이 정의하는 '나'의 모습말이다. 똥배 나와 팔자걸음 걷는 꼰대의 모습이 나의 상징일까? 머리숱 빠지고 하얗게 탈색되어 연륜을 드러낸 겉모습이 나의 상징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의 상징을 정의 내릴 것인가? 나의 동상을 세운다면 어떠한 형상으로 만들어지기를 원하는가? 딱 한 마디로, 딱 하나로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면 살아온 인생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렇게 명확히 자기를 정의 내리고 상징으로 표현해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정의 내리고 상징화화는 과정을 산다고 한다. 결론을 못 내리고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