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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9. 2020

비 그리고 나무와의 대화

 출근길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아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전철을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먹장구름 가득해 햇빛도 없는지라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오는 출근길을 택했는데 비를 조금 맞게 생겼습니다. 출근길 여러 루트 중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오는 길은 제가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긴 합니다만 날이 더우면 걷는데도 땀이 배는 관계로 잠시 소원했던 길로 남겨 두었는데, 어제 시청역 2호선 공사 근로자 5명이 코로나 19 감염자로 밝혀져서 2호선을 타고 오기엔 뭔가 찜찜해졌습니다. 그래서 출근 코스를 1호선을 타고 오는 방법으로 변경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때마침 비를 맞으며 출근을 했습니다. 막 시작한 비라 맞아도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저 기분 좋게 빗방울을 맞이하기로 하고 걷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비에 젖고 습기 차 끈적이는 것보다는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에 초록의 신록이 좋긴 합니다만 세상은 물의 순환 속에 떠다니는 부유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리는 비를 반가워해야 할 일입니다. 비는 생명의 근원이기에 과유불급이긴 하지만 부족한 것보다는 조금 많은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자연의 순환까지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인공강우를 유도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천수답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물론 지하수를 파고 다른 지역에서 생수를 실어오고 생존을 위한 방편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 기반 저변에 공존하는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지구 생명체중에서 인간만이 물을 펑펑 쓰고 있습니다.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둬놓고 독점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오염시키고 화석연료를 무분별히 사용하여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도 인간입니다. 결국 인간만이 편리해지기 위해 인간을 제외한 온갖 생명을 괴롭히고 파괴시켜오며 생명의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깨친 자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최소화를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경제논리로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약삭빠른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제일 많이 배출하는 미국은 대통령이 나서서 탄소 배출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와 산업 개발 논리를 앞세워 지구를 파괴하는 우매한 짓을 하고 있음이 자명한데도 강대국 힘의 논리에 밀려 전 세계가 제대로 대응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46억 년을 살아온 지구는 어차피 유한한 존재입니다. 향후 50억 년을 더 살면 지구도 태양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고 지구를 삼킨 태양도 적색거성이 되어 우주의 흰 별이 될 것입니다. 100년을 살며 생명이라고 존재를 부각해봐야 지구의 나이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 먼지 하나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네. 안 오네. 날씨가 덥네. 예전 같지 않네 하는 관점은 모두 인간의 관점입니다. 어렵네 힘드네 실적이 낮네 하는 것조차 나와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야를 조금만 넓히고 높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후드득 비 내리는 저 바깥조차도 구름 위로 올라가면 햇살 쨍쨍 내리쬐는 눈부신 풍경 아래로 비를 머금은 회색 구름이 점점 옅어지는 장관 아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꼭 시선을 높일 필요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낮추어 보아도 상선약수의 흐름 따라 내려가면 낮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채우고 다시 내려가는 본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다양성의 관점은 무한대의 확률로 존재하며 불확정성의 원리로 현상이 되어 나타납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에 눈길을 주면 길가의 가로수가 초록잎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의 끝점까지 버티고 있는 줄을 알게 됩니다.


나무와의 대화, 이름 모를 잡초와의 대화까지 필요하게 됩니다. "그동안 목이 말랐지? 지금 내리는 비로 목을 축이고 너희의 초록잎을 더욱 싱그럽게 키워나가렴"

세상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세상은 내가 보고 싶은데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는 일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마음 한번 먹으시죠. 어떤 일,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저 비처럼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불금이기에 마음은 더욱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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