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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8. 2020

Life is mosaic and patchwork.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결정'을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것인지, 계속 누워있을 것인지에서부터 시작하여 눈을 뜨는 현상까지도 모든 것이 '선택'입니다. 자의적이냐 본능적이냐에 따른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선택'이 곧 생존의 방향임을 오랜 경험을 통해 습득해 왔습니다. 이 선택에 필요한 정보 중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정보(Special Informations)'에 관심을 보이고 호기심을 보입니다.


이 특별한 정보가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정보가 생존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하지 않으면 생존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버립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정보에 민감해지고 궁극에는 자극적 시각정보의 원천인 텔레비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볼거리 억제 불능증"에 빠져 버리는 모순을 낳기도 합니다.

반면 삶의 정보 중에는 특별한 정보보다 '결정적 정보(Decisive Informations)'가 중요합니다. 결정적 정보는 자연의 심층구조와 연결되어 있는 맥락을 찾아내는 정보입니다. 자연이 대칭과 모듈과 순서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결정적 정보입니다. 결정적 정보는 확장성을 갖습니다. 본질이기에 기본을 구성합니다.


바로 "생명은 모자이크다"를 아는 것도 '결정적 정보'입니다. 인간 DNA의 절반은 바이러스에서 온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세포 속에는 미토콘드리아가 공생하며 신체 에너지의 근원인 ATP를 합성해 냅니다. 산소 호흡을 하는 모든 생명체는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하고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와 죽기를 맹세한 운명공동체입니다. 지구 역사 46억 년 동안 생명이 출현한 40억 년의 모든 생물체의 흔적이 바로 우리였던 것입니다. 모자이크로 40억 년의 세월이 조합되어 빚어낸 모습이 바로 우리였고 밖에 보이는 초록의 나무였던 것입니다. 생명은 자연의 공생이 만들어내고 공진화하는 패치워크(Patchwork)였던 것입니다.


들여다보면 세상에서 '나'라고 존재를 주장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소유권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기억과 기억 사이의 현재를 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몸뚱이를 나라고 주장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몸뚱이조차 어제의 그 몸뚱이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실체가 없는 기억 사이의 존재이자 그 기억의 관계를 엮어내고 붙잡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겨우 100년 정도만 말입니다.

근본을 들여다보는 '결정적 정보'와 마주하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이 같은 근원에서 왔고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같은 운명체였던 것을 알게 됩니다.


본질을 제대로 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는 인문학적 비유를 통해서 자연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바로 일반적 용어로 표현해야 쉽게 알아듣는다는 오해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념적 용어를 사용해 자연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연과학에는 비유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토콘드리아를 들여다보고 텔로미어를 들여다보는 이유입니다. '기억'을 계속 발현시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기억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억으로 새기고 형상화할 일들로 가득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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