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조직원들을 잘 추슬러 생산성을 높이려는 기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조직문화 어쩌고, 동료 간의 우애 어쩌고, 삶의 질 향상 어쩌고, 사회에 기여하고 어쩌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사족이다. 본질은 생산성 높여 수익을 최대한 많이 내자는데 있다. 그래야 기업의 항상성과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존 여부가 최대의 목표라는 소리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살아남기 위해 얼르고 달래고 쪼기도 하고 무릎 꿇고 빌기도 하고 로비도 해야 하는 것이 기업이다. 정도의 차이이고 겉으로 드러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고 사회의 공동선에 얼마나 부합해 가며 살아남느냐일 뿐이다.
기업의 우아한 존재를 너무 폄하하는 것일 수 있으나 본질 위에 포장이 있는 것이다. 백조의 눈부신 자태는 밑에서 수없이 많은 발길질이 있어야 가능한 것과 똑같다.
그래서 기업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소통이 잘 되도록 하는 온갖 방법들이 동원된다. 기업의 힘겨운 발길질인 것이다. 역시 직원들의 충성심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작게는 부서별 체육대회, 산행을 비롯하여 패밀리데이를 마련하여 가족초청 행사를 갖기도 한다. 각종 복지혜택으로 조직의 일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자극한다.
자기 급여에 100% 만족하는 직장인은 하나도 없다. 항상 자기의 노력보다 적게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산성을 개인별로 따져보면 그렇게 평가받기가 쉽지 않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소위 타인의 후광과 조직의 힘에 묻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모든 조직원을 아울러 가야 하는 게 또한 조직의 항상성을 위해 필요하다. 기업의 딜레마이고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다른 기업에서 실행하는데 좋아 보인다고 하면 얼른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기업들이 적용하고 있는 '영어이름 부르기'도 대표적 사례다. 수직적 기업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기 위한 일환이다. 그런데 대부분 기업들이 성공하거나 직원들이 효과가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직급을 없애고 영어이름 부른다고 수직적 조직이 수평적 조직으로 바뀔까?
바뀐 기업도 있고 직원들도 예전보다 상사들을 대하기가 편해졌다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영어이름 부르기가 별로 조직문화를 바꾸는데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아 중단한 기업들도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소리다. 영어이름 부르기가 나름 정착된 기업들은 이미 그렇게 해도 그 분위기를 수용할 만큼 상사들의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영어이름 부르기가 기업의 수평문화 형성에 긍정적일까?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더 지배적이다. 영어이름 부른다고 직장 내에서의 의사결정 관계도 수평이 될 수 없다는 소리다. 누군가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영어이름 부른다고 책임과 결정까지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영어이름 부르는 것은 그저 상징일 따름이다. 영어 별칭 불러준다고 미국사람 되는 것도 아니고 더 글로벌해지는 것도 아니다. 직급의 호칭을 변경하거나 하나로 통일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과 이름의 별칭으로 영어이름 부르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영어권 기업들은 모두 수평적 기업문화를 가졌나? 천만의 말씀. 상사랑 이야기할 때 팔짱 끼거나 주머니에 손 넣고 책상에 걸터앉아 말하는 것이 수평적 문화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렇다고 부동자세로 서서 보고하는 행위가 더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직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조직원 간의 신뢰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신뢰는 직급이 낮은 직원일수록 심리적 안정감의 근간이 된다.
부하직원들이 생각하는 조직의 리더에 대한 신뢰 이미지가 바뀌어 왔다. 눈치 봐야 하는 상사, 서류에 사인만 하는 상사, 정신없이 바쁜 상사의 이미지에서, 내가 하는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주고 조언을 해주는 동료의 역할을 원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직원 간 소통을 잘하고 도움을 주는 역량을 가진 리더를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원하고 있다. 영어이름 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세종대왕께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