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과학'이라는 용어가 똥값에 쓰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왕실에서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대면 논의하겠다'라고 하고 '과학적 근거 없는 괴담 선동은 그만두라'라고 경고한다. 가장 황당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인사청문회에 나온 후보자가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라고 한 순간이다. 헛웃음을 넘어 우리 사회 최고 지성이자 지식인을 앉히는 자리에 오를 사람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종교적 신념이야 개인적 취향이어서 열외로 둔다고 하더라도, 신념과 과학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이 나라는 어떻게 직책을 맡기려고 하면 한결같이 그런 인재들을 추천하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개개인으로 들여다보면 정말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동네에서 천재소리 들었을게 틀림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자리에만 가면 그렇게 되는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자기네 부류들이 제시한 숫자조차 과학적 근거를 대지 못해 촉발된 사건임에도 엉뚱하게 상대방 보고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란다. 이런 황당무계한 논법이 어디 있는가? 과학을 무시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애당초 과학적 논리로 시작되지 않았기에 과학을 입에 올리는 것 초차 불경스럽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근거'는 '합리적인 근거'를 말하는 것일 거다. 감히 과학이라는 용어를 그 입으로 올리지 마라. 과학이 천박해진다. 동네 창피해진다. "너희 동네에서는 과학을 그렇게 쓰니?"라고 묻는다.
우리 사회에서의 과학이 정치적 논쟁의 화술로 쓰이다 보니 옆집 일본에서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과학분야 수상자만 해도 25명이나 되지만 대한민국은 노벨평화상 말고 단 한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용어를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로 벌어진다.
과학(科學 ; science)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인 지식으로 좁은 뜻으로는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을 포괄하는 자연과학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법칙이나 이론 등을 학문과 실험과 같은 지적 탐구활동을 통해 수행하는 모든 학문"을 말한다.
함부로 '과학'을 들먹이지 말라는 소리다. 과학은 엄격하고 엄중하다.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밝혀진 사실만을 인정한다. 인문에서 과학을 들이대면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학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되다 보니 대학에서는 대부분 연구분야에 모두 과학을 가져다 붙였다. 인문과학(humanities), 사회과학, 문화과학 등등 모두가 과학이란다.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조차 용어 사용을 이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의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향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인문과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과학적 방법을 접목한다는 의미의 용어선택이다. 하지만 인문은 실험으로 증명되는 분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문은 상상과 창의로 관계를 정의하는 학문이다.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증명하는데 과학적 기법들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기법을 가져다 쓸 뿐이지 그것이 과학은 아니다.
기초과학이 튼튼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사회에서 바라보는 과학의 눈높이가 낮기 때문이다. 정쟁의 화술로 '과학적 근거'가 작동되는 사회에서 '과학적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과학이 정치로 들어오면 조작의 근거로 전락해 버린다.
제왕적 군주가 권력을 쥐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고양이 방울'을 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군주의 말 한마디면 그 말이 맞든 안 맞든 관계없이 진리이자 진실로 작동하고 법으로 만들어지고 시행령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문제는 그 발언이 합리적이면 상관없는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일 경우다. 내뱉어놨는데 주워 담을 수 없다. 주군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진리로 만들어야 한다. 주군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틀림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입지와 존재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 논법과 논리가 등장한다. '과학적 근거'가 그래서 등장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게 되는 배경이다.
주장이 다를 수 있고 논리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지만 천박해 보이는 것은 지울 수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그동안 무사히 버티내고 유지해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이다. 뭐 내가 걱정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차피 국가공동체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일 뿐이다. '너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야'를 되뇌면 같은 놈이 될 뿐이다. 결국 국가가 공동의 선을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군주의 비위를 맞추느라 알아서 기는 조무래기이기보다는, 잘못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실수였다면 인정하고 사과를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지략가가 필요하다. 그게 군신유의(君臣有義)다. 가려주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충언을 통해 미쳐 군주가 못 본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신하 된 도리다. 그것이 나라를 바로가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마중물이 됨을 명심해야 한다. 자리유지하고 노후에 편히 살기 위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딸랑딸랑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관직에 나아가려면 개인적 욕심을 버리고 국민에 봉사하려는 마음이 우선해야만 한다.